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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정목스님, 고통과 치유를 말하다 /매일경제 2012. 12. 15.(토)
august lee
2012. 12. 15. 12:15
모든 존재엔 자신만의 속도가…
고통은 내가 배워야 할 게 있기 때문에 오는 거예요

강물이 느리게 흐른다고 강물의 등을 떠밀진 마십시오.액셀러레이터도 없는 강물이 빨리 가라 한다고어찌 속력을 낼 수 있겠습니까.달팽이가 느리다고 달팽이를 채찍질하지도 마십시오.우리가 행복이라 믿는 것� 많은 경우행복이 아니라 어리석은 욕심일 때가 대부분입니다.우주의 시계에서 달팽이는 느려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올 한 해는 유난히 `힐링` 열풍이 거셌다. 혜민ㆍ법륜 스님이 낸 힐링 서적들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돌풍 뒤에는 또 한 명의 비구니가 있었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공감)는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정목 스님(52ㆍ정각사 주지)이다.
일찌감치 `불교계 라디오 스타`로 얼굴을 알린 그는 방송과 저서, 강연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그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 벼랑 끝 사람들은 용기를 내 다시 일어선다. 최근 서울 부암동 산자락에서 만난 스님은 강아지처럼 하얀 눈을 좋아했다. 50대지만 동자승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이다. 정갈한 목소리로 풀어낸 삶의 가르침에 해가 저만치 지는 줄도 몰랐다. 매서운 추위도 잠시 물러섰다.
-올 한 해 키워드는 뭐니뭐니해도 `힐링`이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왔을까요.
▶대한민국이 60여 년 동안 정신 없이 살았던 게지요. 이제야 달려온 이 길을 멈춰 서서 되돌아보니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면 안 되겠구나 생각한 것이지요. 저는 그래서 이런 현상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필요한 건강검진을 해본 한 해라고 생각해요. 평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머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열도 나고, 그래서 병원에 가요. 아픈 걸 알아야 치료를 하는 겁니다.
-스님에게 올해는 어떤 해였습니까.
▶많이 고마운 해였지요.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고. 특히 올해만 자살하려는 사람 5명을 건졌어요. 희한하게도 모두 40대이자 남자였어요. 종교가 없는 분도 있었고, 타 종교인도 있었지요. 사회에서 자기 위치가 안정적인 게 아니라 위태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족을 책임져야 하고, 남편으로서,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그 위치가 점점 더 커지는 시기잖아요. 아내와 자식의 눈에 존경스럽고 위대한 인물이 되기보다는, 조금 무시당하는 위치에 가게 되니까 외로움이 밀려오지요. 이런 자기 속마음을 믿고 털어놓을 데가 없다 보니 제게 트위터를 하거나, 울먹이면서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불안하고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어느 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참 별 볼일 없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내 모습도 예쁘지 않고요.
그러니까 지금의 내 모습을 버리고, 다른 모습이 돼 보고 싶은 것이지요. 거기서 고통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내가 생각지 않은 사고도 일어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할 수도 있어요. 그럼 사람들은 내게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해석합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게 오는 거야, 재수없게`. 그런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은 세상에 없어요.
-고통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내가 배워야 할 게 있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 거예요. 사람들은 멋있는 궁전처럼 편안한 곳에서 고통 없이 살아보고 싶어해요. 옛 비유도 있어요. 한 농부가 신(神)에게 기도를 했어요. 1년 동안만 비바람 없이 최고의 좋은 날씨만 주시면 농사 한 번 잘 지어보겠노라고. 신이 그 말을 들어줬어요. 진짜로 순일하고 좋은 날씨가 이어졌어요. 그런데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해야 하는데, 결실이 다 쭉정이밖에 없어요. 볍씨 하나가 익는 데도, 비바람이 치고 눈이 오는 그런 날씨의 우여곡절이 있어야 알맹이가 영글어갑니다. 우리 인생도 똑같아요.
-그래도 사람들은 고통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하잖아요.
▶고통을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었나 생각해 보세요. 수도 없이 당해봤으면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고통과 친해지나요.
▶나에게 못마땅한 한 사람이 있어요. "저 사람은 왜 이래.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정신병자 아냐." 내 우주에서 바라볼 때 저 사람은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면 딱 맞아. 그런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싶어하는 사람은 나예요. 관점이 다르죠.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 좋은 점 하나는 분명히 있어요. 또 뭘 해달라고 부탁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없는 사람이 있어요. 뭐든지 오케이죠.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그 사람이 가벼워 보이고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죠. 그런데 이 사람의 부모에게 그는 친절한 아들이고, 직장 상사의 입장에서는 일단 시도를 해본다고 하니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어떤 평가가 이 사람일까요. 다일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어요.
-생각하기 나름인 건가요.
▶세상은 그냥 중립의 에너지 흐름이에요. 좋다 나쁘다의 판단이 없는 것이죠. 여름이 오면 비가 옵니다. 비가 오는 상황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옷이 젖으니까 구질구질해서 싫은 것이지요.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해 짜증이 나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비가 세상의 더러운 것을 씻어주니 참 좋다고 생각하지요. 암도 마찬가지예요. 암 진단을 받자마자 풀썩 주저앉아서 `인생 끝났다`고 자신과 회사, 가족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깥으로부터 나를 괴롭혔던 수만 가지 조건이 떠오르는 거지요.
-긍정적이고 싶어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쉽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겁니다. 여기 손바닥과 손등이 있어요. `손바닥을 뒤집을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뒤집을 수 없어요. 결국 내 의지에 달려 있어요.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요`라고 의지를 훈련해온 사람은 안 되는 방향으로 갑니다. 이 우주는 안 된다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방식으로, 된다는 사람에게는 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데, 왜 돈을 못 버나요.
▶진정한 마음이 있으면 돈도 벌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마음이 진실인지, 밑바닥에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지 낱낱이 작성해보라는 것이죠. 돈이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이 오지 않아요.
-간절한 것과 집착은 어떻게 다른가요.
▶마음 한 장 뒤집기 차이죠. 집착은 그게 없으면 죽는다는 것이죠. 달라붙는 거예요. 간절한 믿음에는 의심이 없고, 매달리지 않아요. 사랑이건 돈이건 일이건 간절히 원하면서 그걸 막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 나에게는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있는데, 되지 않는 일만 바라보고 있으면 되고 있는 일까지 블랙홀처럼 그쪽으로 빠져 들어가요. 그럼 내 인생이 촉박해지고 조급해지고 우울해지죠. 그때부터 자기 존재의 스피드를 놓쳐요.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는 속뜻은.
▶사실 느리고 빠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섣불리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원래 이 책 제목은 프랑스 장 루슬로의 시가 좋아서 인용한 것이지요. 달팽이가 물에 막 떠내려가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너무 불쌍해 보이죠. 그래서 달팽이를 꺼내 언덕에 가져다 놔요. 언덕에 놓는 순간 달팽이는 죽지요.
내 안에서는 선행이지만, 달팽이 입장에서는 도와준 것이 아닌 셈이지요. 누구에게나 그 존재의 성장 속도가 있어요. 이 생(生)에 와서 배워가야 할 게 다 다릅니다. 사회의 틀에서는 `지금부터 이 속도로 달려가지 않으면 너는 여기 도착 못해`라고 하지만, 인간이 도착해야 할 지점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도착해야 할 선(線)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럼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험하기 위해서, 배울 게 있어서. 경험할 게 없는 존재는 이 세상에 오지 않죠.
-미진한 게 있어서 오는 건가요.
▶이 세상에 와 있는 의미는 알 수 없어요. 왜 왔는지 알 필요도 없어요. 불가(佛家)에서는 이미 모든 존재는 깨달은 존재라고 믿어요. 사람들은 깨달았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버렸어요. 자기가 이미 근원이요, 본래 신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기억을 되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온 목적이 굳이 있다면 한 가지입니다. 나 자신의 성장과 타인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왔다. 이외에는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없어요.
-문득 스님이 열여섯의 나이에 출가하신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에게는 어떤 전환점이 있죠. 저에게는 그때였어요. 마침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다가 제 평소 의문과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전 교우 관계도 원만했고, 겉으로는 명랑하고 활달했어요. 그런데 즐겁다 하는 것도 그 순간 뿐이지, 계속 즐거운 것도 아니고, 친구하고 노는 것도 그 순간이지 하는 생각을 했지요. 전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한 편이었어요.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건 왜 나무이고, 난 사람인가` `왜 나는 나무일 수 없지` 이런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이런 걸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얘기하면 불편해하고 난감해했지요.
-소통의 기술이 따로 있나요.
▶소통이라는 게 테크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테크닉을 갖고는 상대방 마음과 통할 수 없어요.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같지요. 한 사람이 기타를 치는데, 여기에 하나를 두고, 다른 하나는 벽에 세워두고 있어요. 여기서 이 기타 소리를 연주할 때 그 소리가 공간에 퍼지면서 또 하나의 기타가 울려요. 그걸 공명(共嗚)이라고 하는 것이죠. 소통은 사실 공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연주하는 순간, 저기까지 전달되는 것이죠.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다 보면 화가 나는 경우는 없으신가요.
▶몸은 하나인데, 일정에 쫓기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올 때도 있죠. 다만 화가 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또 화가 일어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죠. 분노라는 것은 내가 어떤 대상에서 떨어지고 싶은 거예요. 집착이 달라붙고 싶어하는 것과 반대죠. 저항하는 마음이 일 때는 분노가, 욕망하는 마음에서는 집착이 생기죠.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화가 이 몸 안에서 불길처럼 점화가 되려는 순간이 있어요. 그 기척을 알아차려 숨을 깊게 내리 쉽니다. 호흡은 소방관 역할을 해줍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나무토막이 됐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무토막은 이리 뒹굴리고 저리 뒹굴려도 가만있잖아요. 이것은 일정 시간 훈련을 해야 해요. 일전에 프랑스 마티유 리카르 스님이 한국에 오셨는데 그분이 "분노는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했어요. 내가 그 도둑을 아는 상태에서 도둑이 들어오면 그 도둑에게 당할 일이 없지요. 그런데 모르고 있을 때는 당할 수밖에요. 또 내가 죽은 사람이라고 상상하고 연습하는 수행법도 있지요.
-사회적으로 존경하는 어른이 없다는 얘기가 많습니다만.
▶옛날에는 나는 못난 사람이고 나를 구원해줄 사회의 큰 어른이 있어야 했어요. 그런 시대는 이미 거쳐 왔어요. 정보가 온 세상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는 이때 모든 사람들은 다 똑똑해졌어요. 존경할 스승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승에 의지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마트폰만 봐도 이 세상이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걸요. 이제는 종교에서 해주는 한마디에 속지 않아요. 지금은 모든 의식이 열려가는 시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깨어나야 하는 시대입니다.
- 새해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이미 한 사람 한 사람 다 자기 생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나 혼자만 고통받는 게 아니에요. 고정된 순간, 영원히 가는 생각은 없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상대에 대한 연민과 이해가 생기지요. 내년에는 모두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말기암 환자들이 가장 만나고싶어해

196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스님은 열여섯 살 나이에 출가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은 것이 해인사 출가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비구니계의 원로`인 광우 스님이 은사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1990년 불교방송 개국과 함께 `한국 최초의 비구니 DJ`가 되면서 일약 스타 스님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5월에 펴낸 치유 에세이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는 지금까지 50만부 넘게 팔리며 힐링 열풍의 중심에 섰다.
불교계에서는 이른바 `콘텐츠`와 `소통능력`을 갖춘 보기 드문 스님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서울 삼선동 정각사 주지면서 불교방송 FM 주말 저녁 7시 `마음으로 듣는 음악`과 인터넷 방송 `유나` 방송을 진행한다.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석사를 마쳤다. 1985년부터 5년간 서울대병원에서 지도법사로 활동했다.
스님은 말기암 환자들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만큼 임종을 많이 지켜봤다. 그는 죽음에 대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태어난 적은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헌 옷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며 끝이 아닌 새롭게 변형된 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정각사에서 매월 둘째주 일요일마다 법문을 펼치는데, 많게는 전국에서 800명이 몰린다.
참가자 중에는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상당수 섞여 있다. 어려운 불교 용어를 쓰지 않고,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세속의 고민을 어루만져 준다. "스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평이 많다.
[이향휘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올해 5월에 펴낸 치유 에세이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는 지금까지 50만부 넘게 팔리며 힐링 열풍의 중심에 섰다.
불교계에서는 이른바 `콘텐츠`와 `소통능력`을 갖춘 보기 드문 스님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서울 삼선동 정각사 주지면서 불교방송 FM 주말 저녁 7시 `마음으로 듣는 음악`과 인터넷 방송 `유나` 방송을 진행한다.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석사를 마쳤다. 1985년부터 5년간 서울대병원에서 지도법사로 활동했다.
스님은 말기암 환자들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만큼 임종을 많이 지켜봤다. 그는 죽음에 대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태어난 적은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헌 옷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며 끝이 아닌 새롭게 변형된 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정각사에서 매월 둘째주 일요일마다 법문을 펼치는데, 많게는 전국에서 800명이 몰린다.
[이향휘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