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성인 순교자 대축일: Stay hungry, stay foolish! -박성칠 주임신부님/ 2015. 9.20(일) 잠실3동성당 홈페이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5. 09. 20 우리 선조 우리 성인 용감한 승리자시여 고결한 너의 절개를 확고한 순교정신을 굳세게 우리 가슴에 굳세게 길러 주소서 박해는 전토를 덮어 유혈의 내를 이루고 참수의 산을 이룰 때 저항 없는 약한 육체 간난고초 거듭해도 끝까지 의기는 충천 주의 진리 증명하니 우리 성인 장하도다 배신의 말 한마디면 자기 생명 구할 것을 가혹스런 형고 밑에 쇄신분골 될지라도 주께 향한 굳은 단심 끝까지 변절함 없이 귀한 생명 버리도다 초개처럼 버리도다 지난 주일에는 많은 교우 분들과 함께 강화도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으로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순례하는 우리 마음도 가을 하늘처럼 푸르렀습니다.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은 특히 이름을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날 무명 순교자를 주제로 강론하였습니다. 시복과 시성을 위한 절차에는 꼭 순교자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하셨고 어떻게 신앙을 증거했는지 명확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은 안타깝게도 복자나 성인이 될 수 없는 분들이라 하였습니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성인무명聖人無名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였습니다. 성인은 이름이 없다는 말이니 이들 무명 순교자들이야말로 참 성인이겠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의 복음과 겹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우리는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믿는 사람들은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자기가 가야할 길이라 믿고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지만 그 과정은 고통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 하였습니다. 위의 복음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원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자신을 버리라는 말씀이고 둘째는 날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집으로 가득 차 있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至人無己 지인무기), 내가 이만큼 했다는 자기의 공과 명예를 버리고 (神人無功 신인무공),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심까지도 벗어던지라는 것입니다 (聖人無名 성인무명). 그리고 이것을 매일, 날마다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리라는 것은 결국은 자기 욕심을 벗어던져 자신을 텅 비우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이 주시는 십자가를 기쁘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내세우려 하면서는 희생의 십자가를 하루, 한 시간도 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날마다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듣고 그렇게 살기는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무지막지한 욕을 들어 먹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구나! 오늘 복음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슨탠퍼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한 연설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에 머물고 어리석음에 머물러라! 박재희 선생은 이렇게 풀었습니다. 배부름보가 배고픔에 머물러라! 그 고통이 나를 깨어있게 하리라! 똑똑함보다는 늘 나 자신을 모자라다고 생각하라! 그 비움이 나를 더욱 채워줄 것이다! (박재희, 3분 고전 2, 140쪽). 맹자도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어우환 사어안락 生於憂患 死於安樂! 나를 살리는 길은 편안하고 즐거운 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역경의 길이 결국 나를 살려주는 길이 된다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나 맹자의 이야기는 십자가의 길이 나를 살리게 한다는 말과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목숨을 살리려는 자 죽을 것이라는 말씀과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목숨을 잃어도 좋다고 하는 자 목숨을 살릴 것이라는 말씀과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도 버리고 알량한 공과 명예도 버리고 이름도 버리고 목숨까지 버린 순교자들!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이 죽어 간 듯 보이지만 그분들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에 요한복음의 다음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