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횡성 둔내까지 걸었다 (5) / 2016. 7.15 (금) 13:10 효소랑-13:50 소사가압장-14:35 횡성휴게소- 15:20 민족사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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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랑 공장 입구- 개들이 짖어대니 머무를 수 없어요.
영동고속도로에 설치된 횡성휴게소 1Km 지점 안내판이 보여요.
또 안흥면 경계 표시가 나왔어요.
우뚯 솟은 민족사관고등학교입니다.
산을 넘어갈 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걷는데 길은 구불구불 산을 돌고 돌기만합니다. 중고 건축자재공장을 지나니 칡꽃이 보이고, 저 앞에 산과 산을 이어 고가로 달리는 영동고속도로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맨 오른쪽에 저속차량 전용인 오르막 차선 두 개가 시작됩니다. 가압장을 지나 효소랑 공장이 나오는데, 관동길 카페에서 그 사진을 보았어요.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고갯길이 시작됩니다. 제일 가파른 고갯길이 시작되고 힘도 점점 빠져갔어요. 가장 높은 곳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는 여유를 체험해야 하는데, 숨이 차고 힘들어서 도중에 주저 앉아 쉬었다갑니다. 먹을 것은 없고 보온병에 들어있는 온수 한 컵 이외에는 다 떨어졌어요. 지도를 보니 2키로만 걸으면 영동고속도로 강릉방향 횡성휴게소가 42번 도로 봉황로와 딱 붙어 있어 직원용 통로를 찾아 매점에 가기로 몸과맘을 달래면서 길을 걸었습니다. 희망과 목표가 없다면 힘든 현실을 이겨내기 어렵죠?. 3,40분만 걸으면 된다고 맘 먹으니 목 마름도 배 고픔도 싹 가셨답니다.
고갯마루길에 건사한 집이 두어 채 있고, 숲속에다 또 집터를 닦고 있어요. 고개를 지나면 또 다른 고개, 이러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다가 고속도로를 만납니다. 머리 위로 차들이 씽씽 달리는 소리가 들려요. 소사가압장은 수돗물을 끌어올려 저장했다가 배수지 역할을 하는가 봅니다. 신선마을 입구- 이슬에 취해 구름 타고 노는- 영농법인 옹달샘 이름으로 입간판이 세워졌어요. 지팡이를 손에 쥔 신선 할아버지와 도깨비 아저씨? 그림이 멋있습니다. 이젠 고개를 많이 올라와 두 도로가 만나고, 조금 더 가니 민족사관고등학교 2Km라는 푯말이 있어요. 우측 광장에는 벌통 수 십개가 놓여있고, 두 도로가 다시 만나는데 횡성 휴게소 1Km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안흥면이라는 경계표지판부터 봉화로가 고속도로보다 더 높은 곳을 달려요. 이 부근에 봉화를 올리던 봉화산이 있나 봐요. 머리 꼭대기 하늘 위로 달리던 고가 고속도로를 이제는 아래로 내려다보며 걷습니다. 소감이 어떠했느냐고요? 개미처럼 열심히 한 걸음 한 걸음씩 기어올라와서 겨우 만나니, 반갑고 괜히 헛고생하지 않고 뭔가 이룬 것도 같았어요.
횡성콩마당 된장이라는 간판을 지나니 내리막길입니다. 성급하게 고속도로 아래 뚫린 토끼굴로 들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어요. 그 길은 건너편 서울방향 횡성휴게소 가는 길인가 봅니다. 옳거니! 횡성휴게소가 보이고 보도 위에 주차된 차들이 보이니 직원용 통로가 나타나겠죠? 휴게소의 이런 통로는 차령고개를 넘어 삼남길을 걸을 때 공주 정안휴게소에서 직접 체험해서 알았답니다. 휴게소 매점에서 평창수 2병(1,200원)과 던킨 찹쌀 도너츠 2개(3,400원)을 구입했어요. 냉방 시설이 있는 식당에 앉아 먹고 나와도 누가 뭐라고 안 할터인데, 곧바로 밖으로 나와 길가에 앉아 발 벗고 쉬면서 마시고 먹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신발을 벗고 발을 말리는 것도 시급한 일이었어요.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도보꾼의 맘은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그때그때 당해봐야 알 것입니다.
소사4리에 파스텔 우유공장이 있고 바로 옆에 민족사관고등학교가 보여요. 오후 3시가 지나서 '안흥찐빵마을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푯말이 서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좌측으로 가야 현천리인데'하고 머뭇거리는데, 덕천분교장 입구라는 안내판과 태기산 방향 표시까지 곁들여서 맘 놓고 좌회전했어요. 전주 이씨 이응광 李應光 공로비 옆에 소사리 所思里 유래비가 세워졌습니다.
소사리는 조선시대 강릉현 관할구역으로 정수계 鄭守桂 현감이 강릉으로 부임차 이 마을에서 하루 쉬어갔데요. 흉년이 들어 먹을 것도 없는데 귀리밥을 지어 대접하였고, 나라에서 계속 세금을 내라고 하여 주민들이 살기 어렵다는 실정을 알게 되었답니다. 강릉으로 부임한 정 현감은 상소를 올려 세금을 감면해주었데요. 나중에야 정 현감 덕분임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입구에 은덕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답니다. 그 비석은 없어졌지만 정 현감과 나라의 고마움을 소중히 생각하는 소사所思가 마을 이름이 된 것 같아요. 1970년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사리는 1,2,3,4리로 나누어졌고, 170 가구 500 명이 오손도손 이웃하여 정겹게 살고 있다고 씌여져 있습니다(1999.11.25 제작). 끝줄에 덕애민 선정비 현감 정수계청 숭정후기축 -德愛民 善政碑 縣監 鄭守桂淸 崇楨后己丑이라고 덧붙여졌어요. 이 유래비를 읽고 보니, 이 길이 관동옛길임을 증명하며, 소중한 소[所] 소사리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思]했습니다.
소사보건진료소를 지나니 이 동네 안흥면 소사2리를 버팅말이라고 한다는 비석이 있네요. 안흥초등학교 덕천분교를 지나는데 우승했다는 플랙카드가 보이고, 오후 3시 40분인데 현천리는 3Km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옵니다. 4시 20분 안에 현천4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야만 4시반 차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고 맘이 바빠집니다. 3키로는 40분 안에 갈 수 있는데 지치고 힘이 빠져서인지 속력을 낼 수 없어 답답했어요. 도로에 차들도 없으니 걷기에 얼마나 좋은 길입니까? 그리고 이 옛길을 강릉현감이 걷고 이율곡 선생도 걸었다고 생각하며 힘을 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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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3:15
207 13:50 소사 가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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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소사2리에 있는 안흥초등학교 덕천분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