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B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되기 싫었던 건데-별별다방 / 조선일보 2020. 7.11
august lee
2020. 7. 25. 21:14
문득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듣기 싫던 말이 내 입에서 절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엄마가 속으로만 삼키셨던 맨 마지막 말씀을.
그래. 엄마 믿고 실컷 해봐라 어디.
울엄마 같은 엄마는 되기 싫었던 것뿐인데
“어서 와. 오늘도 수고했어.”
“쾅!”
아무래도 작은 딸이 중간고사를 망친 모양입니다.
요 며칠 눈치를 보아하니 그렇습니다.
그래도 어제까지는 묻는 말에 간신히 대답은 해주더니,
오늘 학교 다녀와서는 아예 울고 싶으니 때려달란 식이네요.
잠긴 방문 앞에 서서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괜찮다고, 그깟 시험 한 번에 네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고요.
아무 대꾸가 없을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방문에 귀를 대게 되더군요.
잠시 그러고 있다가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르르 쿵 하고 뭔가 무너지고 쏟아지는 소리가 납니다.
책상 위의 책들이 바닥으로 쓸려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저는 요즘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딸아이의 시험 성적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건 이미 예상했던 일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집에서 책만 읽히고, 예체능 한두 가지만 느긋하게 배우게 했던 아이입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본인에게 영 안 맞는다고 해서 길게 다니지를 못했죠.
물론 학원 안 다니고도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우리 큰애만 해도, 학원보다는 꾸준한 자기주도학습으로 웬만큼 성적을 냈고,
지금은 본인이 원하던 대학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비결은 아니었습니다.
둘째는 첫째와 달랐습니다.
학원이 안 맞는다더니 혼자 하는 공부는 더 지겨워했습니다.
고1 첫 시험 보고 나면 ‘멘붕’이 올 줄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상을 벗어난 건 오히려 아이의 격한 반응입니다.
워낙 철없고 해맑은 아이라, 멘붕 이후 하루 이틀이면 정신승리를 해낼 줄 알았거든요.
이렇게까지 좌절하고 낙담할 줄은 몰랐습니다.
공부 못해도 괜찮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면 더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요?
“엄마. 나 진짜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갑자기 등뒤에서 문이 열리며 아이가 나를 부릅니다.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지만, 그래도 방문을 열고 나왔다는 게 반가워 얼른 대답했습니다.
“응. 말해.”
“왜 나한테 공부하라는 말 절대 안 했어? 공부는 싫어도 해야 하는 거라는 말 안 해줬잖아.”
“난 너한테나 언니한테나...”
“언니 얘긴 하지 마. 언니는 머리가 좋고 난 나빠. 머리 나쁜 자식은 어릴 때부터 잔소리하면서 끼고 가르쳤어야지.
내 친구 엄마들은 다 그렇게 했어. 그 엄마들이 나쁜 엄마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그 순간 아이가 하려던 말은 뭐였을까요?
이제 보니까 우리 엄마가 나쁜 엄마였다?
남들 다 하는 공부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긴 그랬습니다. 저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감시도 하지 않았고, 시험 성적에 웃고 울지 않았습니다.
가만 놔둬도 저절로 잘할 줄 알고 그랬냐고요?
아닙니다. 못해도 상관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건 행복한 어린 시절이고, 엄마와의 좋은 관계라고 믿었거든요.
제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 건 제 어린 시절의 엄마였습니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극성 엄마였습니다.
남달리 부유했던 것도 아니면서 딸들을 사립초등학교에 보냈고,
늘 공부, 공부,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직접 끼고 가르치면서는 매질도 많이 했고, 비싼 과외를 시킬 때는 선생님에게 머리 조아리며,
제발 숙제 많이 내주십사 부탁하곤 했죠.
무엇보다도 시험점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90점을 못 맞아오면 엄마의 한탄과 눈물,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건, 100점을 맞아서 천국일 때가 더 싫었다는 겁니다.
엄마는 마치 취한 사람처럼 들떠서 콧노래를 부르곤 했죠.
그 모습이 저는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자 다짐하곤 했죠.
나는 나중에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점수가 아닌 아이를 보는 엄마가 되겠다고.
저는 그 다짐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딸들에게 공부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죠.
그럼에도 뒤늦게 발동이 걸려 성적이 수직 상승하는 큰딸을 바라볼 땐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거 봐. 공부는 스스로 원할 때 하면 되는 거야.
나도 엄마가 그렇게 들볶지만 않았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지 몰라.
나를 공부에 손 놓게 한 건 엄마의 잔소리였어.
그러나 오늘 제가 작은 딸에게서 들은 말은 정반대의 원망이네요.
엄마가 억지로라도 공부를 시켰더라면 나도 잘했을 거라는.
서운하기보다는 안쓰러웠습니다.
애들은 힘들면 엄마 탓을 하잖아요.
그만큼 우리 애도 힘들다는 얘기겠죠.
“유진아. 엄마는 네가 무엇보다도 행복한 아이이길 바랬던 거야. 엄마는 어릴 때...”
“알아. 외할머니가 힘들 게 한 거. 그런데 엄마, 외할머니는 엄마를 위해서 그랬던 거야.
이모를 봐. 덕분에 최고 학교 갔잖아. 같이 힘들었어도 이모는 지금 외할머니랑 사이 좋잖아.
그리고 아들 딸도 똑같이 공부시켜서 명문대 보냈잖아.”
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언니는 공부 잘했고 나는 못했다고만 생각했지, 언니에겐 없는 불만을 나만 품고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요.
더구나 어린 내 딸이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엄마는 왜 자기 경험만 가지고 자식을 맘대로 키워?
주위 사람들 말도 들어야지. 다들 공부시키라고 했잖아.
그러다 후회한다고. 맞아. 나 지금 후회해.
애들 학원 다니며 선행할 때, 엄마랑 티비 보고 여행이나 다닌 거 완전 후회해.”
딸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문을 부서져라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쫓아들어가 야단을 치려했지만 그럴 힘이 없더군요.
동시에 떠오른 몇 가지 생각이 제 머리를 온통 뒤집어 놓았거든요.
이런 말 참 하기 싫지만, 이제 보니 그 옛날 우리 엄마가 하던 말이 맞는 말이네요.
자식이란 이래도 엄마 탓, 저래도 엄마 탓이라던.
물론 엄마인 제 탓이 맞습니다.
내 좁은 경험이 전부인 줄 알고 딸들을 그 틀에 맞췄으니까요.
저마다 기질과 생각이 다르다는 걸 미처 몰랐다는 점에서, 저는 우리 엄마와 똑같은 실수를 한 셈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역시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만일 억지로 공부를 시켰더라면 우리 둘째가 우등생이 되었을까요?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큰 애는 시켜도 안 시켜도 잘 했을 아이이고, 둘째는 공부와는 거리가 있는 아이가 맞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엄마가 시켰든 안 시켰든 공부 못 했을 아이였던 겁니다.
제 언니는 어째도 잘 했을 아이였고요.
그릇이 큰 애들은 누구 탓도 안 합니다.
그릇이 작으니까, 엄마 탓을 하는 겁니다.
엄마 밖에 맘껏 탓할 사람이 누가 있나요?
엄마 노릇이란, 아이의 작은 그릇에 차고 넘치는 원망과 반항을 끝없이 닦아내고 치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일이 수십 년 걸리든, 평생 안 끝나든...
“그래. 엄마 생각이 짧았나 보다. 그래도 너 이렇게 버릇 없이 굴면 안 되지.
후회가 되면 지금이라도 같이 한번 해보자. 나도 같이 공부할게.”
“싫어. 늦었어. 엄마 때문에 다 망쳤어. 공부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