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말레이시아 자이언트잎벌레. 대벌레가 날개를 포기한 것과 달리 잎벌레는 모습을 최대한 이파리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주로 야행성으로 활동하면서 트라이아스기 공룡의 눈을 피했다.
덩치 커 개구리도 먹던 포식자
공룡들 눈에 쉽게 띄어 멸절돼
먹을 것 적었던 트라이아스기
곤충은 공룡들의 훌륭한 간식
대벌레는 나뭇가지처럼 진화
잎벌레는 나뭇잎처럼 탈바꿈
트라이아스기(2억 4500만~1억 8000만 년 전)는 우리말로 삼첩기(三疊紀)라고 한다. 이 시대 지층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독일 지층이 세 개로 뚜렷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지구 대륙은 아직 초대륙 판게아를 유지하고 있었다. 후기에 들어서야 판게아가 서서히 분열되기 시작한다. 초기의 건조한 기후가 후기에는 습한 기후로 바뀌는데 전반적으로 더웠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벌써 트라이아스기는 지루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교미 중인 대벌레. 2012년 필자가 마다가스카르 이살루 국립공원을 탐사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등에 올라탄 작은 놈이 수컷이다. 나뭇가지처럼 생긴 대벌레는 트라이아스기 공룡의 눈을 피하기에 좋았다.
트라이아스기는 페름기보다 건조했지만 숲에는 침엽수인 구과식물과 은행나무 그리고 양치식물이 번성했다. 아직 지구에는 풀과 꽃이 없었다. 꽃이 없으니 당연히 과일도 없었다. 고생대에 번성했던 곤충들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귀뚜라미·풀잠자리·딱정벌레·바퀴벌레·파리들에서 새로운 종이 속출했다. 페름기 대멸종에서 11목(目)의 곤충이 살아남았는데 여기에 트라이아스기에 새로이 등장한 8목의 곤충이 더해졌다. 벌과 뱀잠자리 그리고 위장의 대가인 대벌레와 잎벌레도 이때 등장했다. 이 가운데 트라이아스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진 한 가지 목을 제외한 나머지 18가지 목의 곤충은 지금도 존재한다. 트라이아스기는 곤충의 시대였다.
트라이아스기 숲은 윙윙거리는 곤충의 날갯짓 소리로 가득했다. 벌레가 늘어났으니 벌레를 잡아먹을 동물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롱뇽, 개구리가 바삐 돌아다녔다. 그리고 트라이아스기 후기에는 거북과 공룡이 마침내 등장했다. 그리고 최초의 포유류도 등장했다. 물론 초기 포유류들은 공룡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는 못했다. 다양한 공룡들이 숲을 휘젓고 다녔기 때문이다.
트라이아스기에 등장한 공룡 가운데에는 플라테오사우루스처럼 커다란 공룡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새 정도 크기로 작았다. 트라이아스기의 공룡들은 육식성 포식자였다. 최초의 초식공룡인 플라테오사우루스 역시 초식과 육식을 겸하였다. 트라이아스기에는 먹을 만한 식물이 변변치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곤충은 공룡들에게 인기 있는 간식이었다. 영양가도 높은 데다가 말랑말랑해서 소화도 잘 되었다. 공룡들이 곤충을 얼마나 잘 소화했는지 공룡 똥 화석(糞石)에 곤충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공룡들은 날카로운 엄지발톱으로 나무 속에 있는 애벌레를 끄집어 내어 먹었다. 식물에 구기(口器·입틀)를 꽂고 즙을 빨아먹는 멸구들은 공룡에게 가장 쉬운 먹잇감이었다. 혀를 낼름 내밀어 훑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날렵한 공룡들은 날아가는 곤충을 낚아채서 먹었다. 곤충은 트라이아스기 공룡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공룡들의 폭식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곤충들은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 곤충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식물들을 갉아먹고 단물을 빨아먹으면서 괴롭혔기 때문이다. 곤충 등쌀에 견딜 수 없던 식물들은 방어물질을 개발했다. 식물들은 쓴맛이 나고 구토를 유발하는 다양한 유기화합물을 생성했다. 그렇다고 곤충이 굶을 수는 없는 법. 양을 줄이더라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 쓴 물질이 곤충의 몸에 축적됐다. 공룡들은 당황했다. 맛있던 곤충들에게서 견딜 수 없는 쓴맛이 났다. 게다가 곤충들이 빨간색·노란색·주황색처럼 무서운 색깔을 띠면서 경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맛없어. 나를 먹으면 쓴맛 때문에 고생 좀 할 걸”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일부 곤충들은 위장을 하기 시작했다. 대벌레는 날개를 버리고 나뭇가지처럼 생긴 길고 가느다란 몸을 진화시켰다. 차마 날개를 버릴 수 없었던 잎벌레는 나뭇잎을 닮은 초록색 날개를 진화시켰다. 물론 일부러 몸을 변화시켰다는 뜻은 아니다. 우연한 돌연변이로 발생한 표현형이 공룡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 널리 퍼지게 되었을 뿐이다.

2 티타놉테라는 트라이아스기에 등장해서 트라이아스기에 사라진 유일한 곤충 목이다. 오늘날의 여치와 사마귀를 섞어놓은 모습인데 큰 것은 날개 너비가 36㎝에 달했다. 다른 곤충뿐만 아니라 작은 양서류와 파충류도 먹었다
그런데 티타놉테라는 왜 트라이아스기를 견뎌 내지 못하고 멸절하고 말았을까? 더 강력한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공룡들이다. 커다랗고 소란스러운 티타놉테라는 날렵한 공룡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게다가 트라이아스기 말에 공룡들은 깃털을 얻기 시작했다. 거대한 크기를 무기 삼아 작은 척추동물마저 먹이로 삼던 티타놉테라는 거대한 크기 때문에 공룡에게 절멸된 셈이다. 그리고 최초의 새가 등장했다. 쥐라기가 다가올수록 트라이아스기의 숲에서는 티타놉테라의 거친 숨소리 대신 맑은 새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질시대에서 유독 트라이아스기는 지루한 시기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숲에는 굶주린 공룡들이 득실대고 해안에서 낙엽더미에 이르기까지 벌레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정말 소란한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티타놉테라는 트라이아스기의 랜드마크로 전혀 부족하지 않다.
곤충들이 식물을 먹기 시작하면 식물은 몸 바깥으로 화학 신호물질을 내보낸다. 이것을 페로몬이라고 한다. 식물이 내보내는 페로몬에는 “나는 아직 안 익었어. 나를 먹으면 고생 좀 할 거야”라는 곤충에게 보내는 정보가 담겨 있다. 페로몬은 같은 식물에는 “여보게들, 적들이 나타났어. 준비하라고”라는 신호로 작용한다.
곤충이라고 해서 바보가 아니다. 이 신호에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지 않는다. 다시 공격한다. 그러면 식물은 또 다른 신호를 보내야 한다. 비용과 피해가 만만치 않다. 더 효율적인 방어시스템은 없을까?
7월 10일자 ‘네이처 생태 및 진화’에는 식물들이 자신을 갉아먹는 애벌레로 하여금 동종포식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한 최신 논문이 실렸다. 메틸자스몬산(MeJA)은 곤충의 공격을 받았을 때 식물이 내뿜는 페로몬 가운데 하나다. 토마토의 경우 MeJA를 감지하면 맛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애벌레의 공격을 줄인다. 여기까지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MeJA에게는 그 이상의 역할이 있었다. MeJA에 노출된 토마토 잎을 먹은 애벌레는 식성을 바꾸었다. 맛없는 토마토 잎 대신 동료 애벌레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초식 애벌레를 육식 애벌레로 바꾼 것이다. 식물은 곤충을 회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곤충끼리 서로 잡아먹음으로써 곤충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식을 이미 개발한 것이다. 이 기술은 언제 생겼을까? 아마도 트라이아스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