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포르투게스 출발 30일전
2018. 8.29 (수) 10:30
포르투 5 브러더스, 까미노 5형제가 을지로 3가 Red Cap에서 만났죠. 출발30일전, 항공권과 기차표, 호텔예약증을 받고 담당팀 Y과장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데,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9월 27일(목) 13:20 인천발 KE901 파리행 18:30 착
2. 9월 28일(금) 09:48 파리발 TGV8535 생장행 15:50 바욘 도착, 환승
3. 9월 30일(일) 11:30 팜프로냐발 마드리드행 열차 14:40 착
4. 10월 1일(월) 19:45 마드리드발 리스본행 항공기 20:00 착
5. 10월 16일(화) 07:48 산티아고발 마드리드행 열차 13:10 착
6. 10월 16일(화) 20:00 마드리드발 KE914 인천행 10.17. 15:15 착
순례길 준비물 목록과 체크리스트, 생존 스페인어 사전, 까미노앱과 구글 지도를 핸드폰에 실었다. 6년 전, 2012년 45일 동안 프랑스길(33일 포함) 순례에서 빠졌던 피레네 산맥(생장- 론세스바이예스) 27Km 구간을 걸어서 가자는 것이었다. 프랑스길 초입 시작 구간을 빼먹어 찜찜하던 맘을 편안하게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5형제는 윤기중 도미니꼬 단장님과 박찬도 바오로 부단장님, 공영인 선발대장과 진풍길 비오 섭외부장, 그리고 홍보담당 이창조 아오스딩입니다. 공영인 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이고 다른 분들은 모두 가톨릭이어서 1佛 4天이라는 말이 나왔죠.
2017. 10월부터 회동하여, Red Cap 산티아고 전문여행사와 계약하고, 매월 둘째 수요일에 배낭을 메고 산행을 해왔어요. 최근에는 9월 12일(수) 10시에 옛골 종점에서 만나 이수봉을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윤기중 단장님은 모든 계획과 일정, 여러 가지 정보를 손수 작성하고, 유인물로 만들어주셨어요. 박찬도 부단장님은 재무와 회계 등 어려운 임무를 총괄해주셨습니다. 공영인 원장님과 진풍길 교장님도 인화 조성과 업무 조정에 솔선 수범해 주셨어요. 어리는 사진이나 찍어서 기록하고, 제 블로그 ‘걸으며 노래 부르자’에 홍보할 생각입니다.
2012년에 이어 6년만에 다시 까미노 포르투갈길을 걷는다
2018. 9,11 (화)
산티아고에 다녀와서 한비야의 바람의 딸 이야기에 이어, 세계 오지에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국내 도보로 바뀐 여행기를 읽었습니다. 2012년 가을에 곧바로 해남 땅끝마을에서 삼남길을 걸어서 올라왔어요. 전남은 안내지도와 표지판이 잘 되어있어서 장성 갈재[노령 蘆嶺]까지는 수월하였습니다. 당시 전북이나 충남지역에는 지도도 표지판도 없어서 나름대로 길을 걸었어요. 정읍- 김제- 논산- 함열까지 걷다가 중단하고 귀가하였습니다.
얼마후에 다시 국도를 따라 강경-논산-공주-천안-직산으로 걸어 올라오다가 경기 평택에서 삼남길 안내표지판을 발견했어요. 힘을 얻어 오산- 수원 서호- 인덕원- 남태령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남태령에서 해남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답니다. 경기도 구간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하루 코스씩 걸었어요. 매 주 목요일에 만나는 서울교육삼락회 등산부 산우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5-6명의 도반들을 만납니다. 남태령역에서 모여 과천- 백운호수- 지지대- 화성역까지, 천안에서 차령산맥을 넘어 공주까지도 1일 코스였어요.
전북 구간부터는 1박 2일이나 2박 3일 코스로 잡아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완주하였습니다.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를 구경하고 완도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상경하였어요. 삼남길 완주에 이어서, 도반들과 영남길을 걷고 또 걸어서 부산 동래까지 완주하였답니다. 경기 영남길- 능선따라-도 걷고, 최근에는 판교에서 경강선으로 여주로 이동하여 원주- 횡성- 안흥- 대화- 평창까지 걸었어요. 대관령 옛길을 넘어 강릉에서 동해안 따라 관동길을 걸어 평해 월송정까지 완주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삼남길과 영남길, 그리고 관동길 완주는 어리가 스페인에서 프랑스길을 33일간 걸어서 산티아고 콤푸스텔라에 갔던 그 영향을 받은 것같습니다, 가서 야고버 성인은 못만나고 유해가 들어있다는 은제 銀製 곽을 보았어요. 그 분이 제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이제 6년 만에 포르투게스에 도전하여 또한 번 산티아고에 가렵니다.
새벽부터 일찍 서둘러 인천공항에서 모이다.
2018. 9. 27 (목)
길다면 참 긴 하루였어요. 몇 번이나 잠을 깨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07:00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종합운동장역에서 김포공항역까지 46분, 곧바로 인천공항행 열차가 들어와서 환승하니 09:00 도착하였어요. 집합시간 10:20까지 1시간 20분이나 여유가 있었습니다. 10:00 이전에 모두 모여 배낭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나와서 점심을 사먹고, 걷다가 커피를 마셨어요. 12:50 31번 GATE에서 파리행 KE929편에 올랐습니다. 웬일인지 출발이 늦어져 14:00쯤 이륙했어요. 신문도 보고 책도 읽었지만 13시간 비행 시간 동안에 그냥 앉아있지 않고 너댓 번이나 나와서 운동을 했습니다.
남들은 파리나 미국을 다녀오면 부러워하지만, 벌을 써는 것같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기내식을 두 번 먹고, 귀국편 항공기에서 받는 스카이쇼핑으로 화장품 4개를 예매하였어요. 파리공항에 도착하여 출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대기하다가, 예전에 함께 근무하던 K장학관 일행 세 분과 만났습니다. 4번 정류장에서 숙소행 버스를 탔는데 19유로씩 냈어요. 25,000원이니 꽤 비싼 편입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요금은 18유로인데 화물 운송요금으로 1유로를 더 받는데요.
한 시간 남짓 달려서 종점에서 내렸습니다. 숙소는 몽파르나스역 부근에 있었어요. 540호실에서 P부단장님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무탈하게 예정된 몽파르나스 호텔에서 쉴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파리에서 바욘까지 TGV를 타고 가서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2018. 9. 28 (금)
새벽에 잠이 깨어 보니, 배낭 무게 때문에 걱정입니다. 아끼던 하복을 혁대와 함께 버렸어요. 공항에서 로밍 대신에 모두 잠궈 놓았기에 핸드폰은 불통이어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서울에 무사 도착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전 6시 30분에 문을 여는 호텔 식당에 가니, 부풰식으로 음식 종류도 다양하고 고급인 것 같았어요. 여느 관광객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 것 같고, 추천해준 RED CAP 여행사에 대한 신뢰가 갔습니다.
09:48 발 생장행 열차를 타야합니다. 6번 플랫포옴인데 찾기가 그렇게 쉽지 않고, 사람들이 많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물이 없어서 가게에서 구매하는데 500미리 한 병에 3유로(4,000원)입니다. 이룬행 TGV열차는 바욘에서 환승해야 생장에 갈 수 있어요. 우리가 타야할 열차는 200미터도 더 되는 기관차 바로 뒤에 있습니다.
09:52 출발해서 4시간 달리는 기차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좌우 차창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평야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열차가 2시간 달리는 것에 비하면, 그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 수 있겠어요. 밀밭은 추수가 끝나고, 포도나무 단지나 상당히 자란 묘목 정도의 나무들, 그 넓은 땅들은 프랑스가 농업국가라고 말 할만합니다. 4시간을 달리면서 우리나라 호남평야와는 비교도 안되는 큰 규모에 놀랐어요. 포도주로 유명한 보르도를 지나서 바이욘역에서 내렸습니다. 생장행 환승열차 시간이 1시간도 남지 않아 역 앞에 있는 카페에서 카페콘레체를 시켜 놓고 가져간 빵을 먹었어요. 카페는 커피, 콘은 ...을 포함한 ,레체는 우유를 말합니다. 카페콘레체란 우유를 듭뿍 넣은 커피입니다.
점심 요기를 하고 역에서 기다리니, 생장행 열차는 바이욘역이 시발점이었어요. 열차가 달리는데, 이제까지와 달리 계곡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1시간을 달려서 생장에 도착했습니다. 자! 이제는 크리덴셜을 만들고 스템프를 찍으러 가야 했어요. 도중에 까미노 표지가 붙어있는 곳은 가게이고, 사무실을 골목 맨 끝에 있습니다. 몇 사람 뒤에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드디어 까미노 프랑스길 입문증명서를 받았어요. 이제 숙소를 잡아야죠.
골목을 조금 내려와서 아침 식사를 포함하여 1인당 22.5유로로 숙소를 잡았습니다. 숙소와 마주보고 있는 식당에서 12유로인 순례자 코스로 저녁을 먹었는데, 16유로인 보르도 와인 한 병을 5인이 나누어 마셨어요. 내일 하루 종일 걸어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기에 윤기중 단장님으로부터 절주령을 명 받았습니다. 숙소 옆 성당에서는 30분마다 종을 쳤어요. 내일 6시 30분에 식사하고 7시 30분 출발합니다. 천천히 쉬엄쉬엄 걷자고 다짐했어요.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론세스바이예스까지 27Km라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40Km로 찍혔어요.
자! 6년 전 프랑스길을 걸을 때, 나이와 체력을 감안하여 생장에서 걸어 피레네 산맥을 넘지 않고, 론세스바이예스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790Km를 33일 동안 걸었습니다. 그 덕분에 2012년 6인방은 파리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가우디 공원과 패밀리야 성당, 올림픽경기장 옆에 있는 황영조 기념 코너, 분수 축제와 해안가를 구경할 수 있었어요. 바르셀로나에서 밤차를 타고 팜프로냐까지 와서, 택시 2대에 분승하여 론세스바이예스로 이동하였지요. 프랑스길이 시작되는 생장에서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이예스까지 하루 종일 걷는 코스를 빼어먹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였답니다. 하여, 이번 포르투게스(포르투갈에서 산티아고로 걷는 까미노길)에 앞서 빼어먹은 프랑스길 초입을 먼저 보충하자고 다짐했답니다. 그 덕분에 파리의 밤길도 구경하고 에펠탑 부근에 있는 몽파르나스 호텔에서 잠을 잤었죠. TGV를 타고 4시간 달리면서, 프랑스 농촌 풍경과 그 넓은 평원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밀밭에는 이미 추수가 끝났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나무 군단들과 옥수수밭을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어요. 별생각 달생각 오만가지 생각..... 그리고 내일모레 팔십인 나이에 가족들 걱정에도 불구하고, 1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꼭 걸어서 피레네를 넘어야겠느냐는 자문자답도 말입니다. 그런저런 생각에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나 봐요.
피레네 산맥을 넘는 또다른 길고도 긴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2018. 9. 29 (토)
0530 기상하여, 복도에서 짐을 꾸린 후에 식당에 들어가 주인이 차려놓은 아침식사를 했어요. 빵과 삶은 계란 1, 커피 2잔과 쥬스 1잔이 전부입니다. 한쪽은 독일 사람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어리는 점심이 걱정되어 식빵을 잘라 비닐봉지에 넣었어요. 숙박비와 함께 낸 22.5유로에 포함된 것이기에- 그리고 주인도 없고 또 다른 손님도 없었음-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단장님이 보니 내 아래 침대에서 잠을 잔 독일인이 그러면 안된다는 말로 투덜대며 얼굴을 찡그렀다고 말해주셨어요. 문화의 차이일까요? 그 독일인은 어리를 욕심쟁이라고 보았겠지만, 어리는 조금도 고갤 숙이고 싶지 않았답니다. 다만, 아주 좋은 출발을 앞두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 충돌은 피하고 싶어 모르는 척 참았어요.
깜깜한 오밤중에 렌턴을 비추며 노랑색 화살표를 찾아갔습니다. 1차 목표는 8Km라는 오리송 알베르게인데, 실제로 재어보니 10.5Km였습니다. 도중에 문을 연 카페가 있어 들어갔더니 커피만 내어주고 잘 꾸며진 정원은 들어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정원에서는 자기 집 손님들인지 유쾌하게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0700에 출발했으니 오리송 알베르게까지는 서너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린 빵과 커피를 또 먹고 마셨어요. 이제 20Km가 남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25Km가 넘을 지도 모릅니다.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좋고 청명한 날씨여서 기분이 상쾌합니다. 공영인 원장님은 가시는 곳곳마다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맑은 날씨가 계속되니 염려 말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어요.
능선 정상 부근에는 점심 식사를 도와주려고 식당차가 와 있었습니다. 정오부터 2시간만 운영하고 내려간다고 하네요. 우리 5형제들은 앞서가는 사람들을 뒤따르지 않고, 안내도를 따라 내려왔어요. 가끔 자갈길이 나타나 너머지기 쉬우니 조심해야 합니다. 박찬도 부단장님이 먼저 내려가 론세스바이예스로 가는 길을 알아보기로 하셨어요. 고진감래, 론세스바이예스 숙소 건물이 저 앞에 나타났습니다. 6년만에 만나니 반가웠어요. 새벽 07시에 생장을 출발하여 17:30에 도착했으니 10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숙소를 향해 가다가 파리공항에서 만났던 K장학관 일행을 만났어요. 왜 이렇게 늦었느냐며, 06:30에 출발하여 15:00에 도착했으니 8시간 반이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2시간이나 차이가 났는데,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K장학관님은 80이 넘으셨지만 평소에 단식으로 건강관리를 잘 하셨어요. 생장에서 출발하셨다면 놀랄만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이 걸리는 코스이니 지금도 프랑스길을 걷고 계시겠죠?
자! 이젠 스페인 까미노길을 자동차로, 직접 걸어서 팜프로냐로 간다 !
2018. 9. 30 (일)
론세스바이예스 알베르게에서는 새벽에 프랑스길을 떠나는 까미노들이 벌써 준비를 마치고, 문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 일행은 마드리드행 열차를 타기 위해 팜프로냐로 가야합니다. 포르투갈 까미노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죠. 알베르게에서 배부한 식권을 가지고 겨우 식당을 찾아서 아침을 먹었어요. 빵을 좀더 달라고 부탁하고, 커피도 더 달라고 했더니 추가요금을 요구하였습니다. 공짜로 주는 와인 맛은 씁쓸하였어요. 시설이 참 좋아졌어요. 어제 저는 1유로를 내고 땀에 흠뻑 젖은 옷 너댓 가지를 자동세탁기에 돌렸습니다. 기계를 돌리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분이 도와주었어요. 시간도 40분 걸린다더니 15분만에 드라이까지 끝났지요.
까미노들이 모두 떠난 숙소에 관리자들이 들어와서 8시까지 비워달랬어요. 배낭을 메고 정문을 나섰습니다. 어리는 길을 착각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 식당이자 버스 정류장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가 쉬었어요. 일요일에는 버스가 거의 다니지 않아, 단장님이 사무실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하셨습니다. 5인이 팜프로냐로 간다니까 9시 30분에 갈 터이니 기다리라는 연락이 왔어요. 9인승 승합차가 나타나서 뒤에 배낭을 싣고, 다른 손님 한 분도 더 타고 출발했습니다.
6년 전에 프랑스길 790Km 시발점을 승합차로 가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까마노 길과 자동차 길은 사뭇 달랐습니다. 스프링 고개처럼 지그재그로 내리막길입니다. 까미노 길과 만나는 길로 차가 들어섭니다. 웬일일까? 궁금했는데 커피 한 잔하고 가자는 것 같았어요. 바나나도 한 개씩 더 먹고 몸과 맘 편하게 가지며 땀 흘리고 걷는 순례자들을 생각합니다. 한참 여유를 즐기다가 출발했는데, 수비리에서 승객 두 명을 더 태웠어요. 우리는 그냥 편하게 승용차편으로 팜프로냐에 입성할 것이 아니라, 3~4Km는 걷자고 하여, 물레방아터인 이래?에 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6년 전에는 2+4로 나누어져 걸었던 코스를 5인방이 팜프로냐 외곽 도시를사이좋게 걸었어요. 팜프로냐 성城이 보입니다. 1시간쯤 걸었지만, 대부분을 차편으로 왔기에 알베르게에서 1,2,3,4,5번 침대를 배정 받았어요. 오후 4시가 되어야 접수를 받는다더니, 지역이나 사정에 따라 다른가 봐요. 배낭을 내려놓고 시가지를 구경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염치없이 쉬고 있는데, 윤기중 단장님과 진풍길 섭외부장님은 내일 우리가 찾아가야할 픔프로냐 기차역까지 사전 답사를 다녀오셨습니다. 까미노 길과는 다른 길이죠. 우연히 들린 식당은 명품 쇠고기와 삶은 감자였고 15유로인 와인을 두 병이나 마셨어요. 내일은 팜프로냐역에서 마드리드에 가서 폴투갈 리스본행 항공기를 타야합니다. 프랑스의 대평원을 보았는데, 스페인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열차 타고 마드리드로, 항공편으로 포르투갈 리스본 간다!
2018. 10. 1(월)
07:00 숙소 앞 카페에서 빵 3개가 든 접시를 받아 카페콘레체 한잔과 아침 식사를 한다. 배낭을 메고 팜프로냐 성城을 빠져나온다. 월요일 아침, 츨근길에 분주한 시민들과 만납니다. 팜프로냐는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곳인데, 벽에 그 모습이 그려져 있군요. 모두들 포옴을 잡고 사진을 찍습니다. 옆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어요. 한참을 가니, 자전거 묘기를 배우는 연습장을 만나서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진풍길 님은 연습하러 나온 중학생?들과 간단한 대화로 사진을 찍어주셔요. 그 짬을 이용하여 근육운동을 하고, K원장님은 수제자를 자처하며 같은 동작을 따라 하십니다. 길을 건너니 우측에 로마시대 때 놓은 다리가 보여요, 물론 수 없이 개보수를 했겠지만 그걸 그렇게 보존하며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팜프로냐 기차역에 도착해 보니, 아직도 출발 시간이 2시간 이상 남아있어요. 진풍길 님이 배낭을 지키고 우린 공원 산책길에 오릅니다, 다리에는 자전거가 잘 다닐 수 있게 완만한 통로를 만들어 놓았어요,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가 역으로 오니, 팜프로냐 입성과 떠남을 자축하는 와인파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들 그러한데 점심으로 빵 봉지를 하나씩 배급 받았어요. 한적하던 역 구내가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인파로 만원을 이룹니다. 스페인 기차를 타니, 레시버를 하나씩 나누어주어요. 스페인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즐기라는 것이죠. 열차 좌우로 광활한 평원이 스쳐지나갑니다. 프랑스 평원과 흡사하네요. 도중에 나누어 준 빵을 먹었는데, 반찬이 없었는데도 맛있고 먹을 만 했답니다. 5시간 여 달리는 동안에 딱 두 군데만 정차하고, 마드리드 차마르탄 역에 도착합니다.
이제 긴장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도차 역에 내리면, 역전 시계탑 앞에서 마드리드 공항행 노랑색 버스를 타라고 윤기중 단장님이 주신 유인물에 적혀있습니다. 방향을 잘 모르니 몇몇 신사 숙녀분들에게 묻고 또 물어서 시계탑 앞에 왔어요. 우측에는 머리만 내놓은 아동상 두 개가 반기고 있었습니다. 5유로씩 내고 공항버스에 오릅니다. 목적지는 제4터미널입니다, 6년 전에 프랑스길을 완주하고 귀국길에 와 본 곳이지만 터미널이 다른가 봐요. 배낭을 부치려고 포장을 하는데 비닐봉지가 없어서 그냥 대충 묶어서 발송했어요. 이제 어디로 가는 지 아십니까? 밤 비행기로 포르투갈 리스본 행입니다. 검색대를 통과할 때 신발까지도 다 벗었죠. 그리고 탑승 출구도 미정입니다. 보완상 출발 1시간 전에야 알려준다니, 무언가 테러 대비용인가 봅니다.
공항 구내식당에서 빵이 아닌 밥을 먹었어요. 볶은 밥인 것 같은데, 정보가 참 중요합니다. 오후 7시15분발 비행기는 8시에야 출발했어요. 어리는 창가에 앉아서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좌석 간격이 좁아서 불편했지만 금방 리스본에 도착했어요. 리스본을 현지에서는 리스보아라고 부릅니다. 리스보아의 아름다운 야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큰 행운이었답니다. 리스본 공항에서 4번 출구로 나와 18번 정류장에서 관광버스(3유로씩)를 탔어요. 우리가 내릴 호세오 ?광장이라는 것을 말하고,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아 버스기사에게 거기에 가면, 꼭 알려달라고 얘기하자 ‘I know'랍니다. 오늘도 구세주를 여러 번 만나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문디알 호텔로 들어가는 골목길은 어두컴컴하고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어요. 우리가 다섯 명이어서 그렇지 한두 명이면 덤벼들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답니다. 문디얼 호텔에 와 보니, 문이 잠겨있어요. ‘아니, 폐업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왼쪽으로 돌아가니,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320호와 816호실을 배정받고 배낭을 풀어 놓았어요. 저녁밥은 그렇고 리스본에 와서 간식을 하자고 밖에 나갔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빵가게는 문을 닫으며, 큰길가로 가보라고 안내했어요. 버스 정류장 옆 가게에 들어가니, 종업원들 모두가 흑인들이네요. 우리가 코레아라니까, 그 중에 한 명이 자기는 경기도 안산에서 살았다면서 친근감을 표시합니다. 안주를 너무 많이 시켜 남겼답니다. 그리고 음식은 양과 질로 구분되는데, 길거리 음식은 풍성해서 배고플 때 먹는 것이고, 가격이 좀 비싸도 명품식당에 가면 고급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내일 일정에 관한 회의를 열었어요. 06:50 호텔 1층 식당에서 조반 먹고, 제로니모 수도원을 다녀온 후에 12:00 안에 돌아온 후에 관광지인 신트라로 떠나자고 말입니다. 여기에서도 로비층은 0층이고, 우리가 말하는 2층이 1층입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줄 서 기다리다 제로니모 수도원을 보다!
2018. 10. 2 (화)
자정이 지나서 졸리지만 몇 가지 짐을 줄이고 배낭을 꾸립니다. 호텔방이 크고 시설이 좋아서 쉽게 양말과 젖은 옷을 빨아 널었어요. 12시 반쯤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새벽 2시네요. 핸드폰과 카메라 전지를 다시 충전하고 곯아떨어집니다. 4시 30분에 일어나서, 어제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보니 머리가 멍하고 정리가 잘 되지 않았어요. 분명히 기차도 타고 마드리드 공항 4터미널에서 항공편으로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 와서 문디알 MUNDIAL 호텔에 들었던 것 같은데, 자꾸만 헷갈립니다. 아침 6시 50분에 식사라고 했으니, 좀더 눈을 부쳐야만 할 것 같습니다. 아! 여기 리스본은 스페인과 1시간 격차가 더 느리니, 한국과는 8시간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가는 곳 날씨는 걱정 말라는 1불 4천중 1불 一佛 공영인 원장님의 말씀처럼 닷새가 되었지만 화창한 날씨가 계속됩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 hotel?을 치고, 카톡으로 큰아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어요. 로비 층으로 내려와 대기하다가 1층(2층을 여기에서는 1층이라고 부름) 고급 식당에서 부풰식 조반을 아주 잘 먹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참 많아요. Red Cap 여행사에 감사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여기는 리스본을 찾는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센터 같은 곳입니다. 조금만 걸으면 각 곳으로 가는 전차 시발점이고, 그 옆에는 시골 장터와도 같은 먹거리 시장이 있어요.
우리는 배낭을 잘 꾸려서 3층 방에 모아놓고, 오전 중에 시내 관광을 나갑니다. 묻고 물어서 제로니모 수도원 가는 전차를 탔어요. 가는 도중에 오늘의 구세주 신사를 만나 수도원 가까운 역에서 내려서, 공원을 종단합니다. 가만 있자! 전철을 탔는데, 내릴 때는 버스에서 내린 것 같기도 하네요. 도중에 버스를 환승했나? 이게 참 어렵습니다. 메모장에 기록이 안 되어있으면 헷갈리네요. 공원엔 웬 동상이 세워져 있고, 저 앞에는 항구인지 배들이 보입니다. 걸어서 한 블록을 가니, 저 앞에 제로니모 수도원이 있고 벌써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 보여요. 아직 개관 시간이 되지 않았는지 들어가는 사람들은 없고. 관광버스에서 내린 단체 관람객들이 오자마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반 관람객과 단체 관람객은 입장하는 곳이 다른 것 같아요. 일반 관람객들은 관람이 끝나면, 기다렸다가 요금을 별도로 내고 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나 봅니다, 저는 제로니모 수도원은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추대한 예로니모 성인과 관계있는 곳으로 알았어요. 나중에 여러 가지 정보를 입수해보니, 원래 왕실 무덤으로 건축한 건물이래요. 지금은 인도 항로를 발견하고 지배했던 바스고다가마와 국민 시인詩人 루이즈데 카몽스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답니다. 성당은 단체 관람객이 순방 코스여서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웅장하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패밀리 성당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어리는 가우디의 창작품으로 알았는데, 모방?은 아닐지라도 많은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1시간 가까이 기다리면서 저 앞에 보이는 탑이 벨렘탑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꼭대기 부문만 보이는데 단조롭고 저 탑이 무엇으로 유명할까 궁금했습니다. 12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추느라고 곧바로 호텔로 돌아 왔어요. 알고 보니, 좌측으로 보이는 바스고다가마 기념비와도 관련이 있답니다. 인도 항로를 개척한 원정 기념으로 1509년에 바다 속에 세워진 건물인데, 그 건물을 올라가려고 많은 관람객들이 많은 시간을 기다린대요. 400미터 떨어진 곳에 에그타르트 빵을 만들어 파는 제과점이 있답니다. 우리 일행은 포르투게스 -포르투갈 까미노길-를 걸으려고 왔다가 잠시 들린 곳이죠. 리스본에도 관광할 곳이 많다는 걸 알았고, 우리는 겉만 훓터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호텔에 오는 길이 버스냐 전철이냐 걱정하다가 다인승 택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택시를 탔습니다. 길이 빠르고 요금도 5인이 타는 전철요금보다 더 싸자는 걸 알고 조금 놀랐어요. 이러한 사실은 오후 일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문디알 호텔에 돌아와서 체크아웃하는데 15유로던가 추가요금을 낸 것 같아요. 배낭을 메고 이제 유명 관광지 신트라로 가야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떠들썩한 시골 장터 기운이 솟는 천막촌이 보여요. 먹거리 장터입니다. 포르투갈식 순대집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두 접시인가 시켜놓으니, 공영인 원장님이 15유로짜리 고급 와인 한 병을 사 오십니다. 아침을 잘 먹었기에 그걸로 점심은 충분하였어요. 하도 음악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여 단장님께 저 걸 하나 구입해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었어요. 좋다고 하시기에 15유로인가 주고 구입했습니다. CD 한 장 무게야 얼마나 무겁겠느냐 하고 말입니다. 누구에게 주려고 샀을까요?
이제, 점심도 먹었으니 신트라로 가야합니다. 기차를 타느냐, 버스를 타느냐,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까지 전철로 어떻게 환승하여 도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보니, 어디가 동서남북인지 이쪽인지 저쪽인지 도대체 구분도 어렵고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니? 이럴 때 구세주가 나타난다고 해도 물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옳거니, 역이든지 터미널이든지, 우리 다인승 택시를 잡아타고 가자! 원래 목적은 역이나 터미널이었습니다. 까미노는 배낭을 벗어서 치중차량에 실어서도 안 되며, 택시를 탄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입니다. 까마노는 관광객과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택시비를 흥정하다보니, ‘신트라까지는 얼마요?’라고 물어보자는 소리가 나왔어요. 어리가 한 소리인지 누가 주동자인지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45유로라던가요. 그럼 어디보자! 1인당 10유로라. 1만 3천원도 안 되는 돈이네..... 그냥 갑시다! 그 소리도 어디서 누가 한 소리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후에는 그저 신트라로 이동만 하기로 했던 계획이 바꾸었답니다. 누군가가 우리도 잘 모르는 분이 우리의 맘을 조정하여 좋은 길로 인도해주셨다고 생각하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입니까?
구세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 가운데 구세주가 계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낼 모래가 80인 어리는 한 밤중에 이 글을 쓰면서 참 부끄럽게도 눈물을 펑펑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하루를 더 벌 수 있었고,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도 사흘이나 머물면서 구경도 하고 피로에 쌓인 몸을 푹 쉴 수 있었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HERE & NOW- 내가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할 중대한 순간들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택시는 고속도로를 달려 신트라에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님이 소개해준 호스텔은 만원이었고, 거기에서 소개해 준 곳을 찾아갔어요. 방 2개에 250유로(2인용 120, 3인용 130)랍니다. 알베르게 5유로나 호스텔 12유로씩 내고 2층 침대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15만원이 넘는 별 셋 호텔비는 엄청난 거금이죠. 10배가 넘으니까요. 그렇다고 다른 방도가 없으니 능동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숙소에 배낭을 넣고 바로 앞에 보이는 신트라 궁전을 관람하러 갔어요. 줄을 서서 기다려만 입장할 수 있다던 궁전은 텅 빈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시간쯤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윤 단장님이 ‘오늘 수고 많으셨으니. 호텔에 가서 푹 쉽시다.’ 하셨어요. 조금 내려오던 우리는 단장님의 호출에 뒤돌아섰습니다.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 저 산 위에 있는 페나궁전을 마저 보고 가면 안 될까요?’ 우린 즉시 이구동성으로 ‘좋지요, 좋다마다요.’ 호응하였어요.
버스로 산 위 입구까지 올라가 한참 동안 등산 후에 페나궁전에 입장하였답니다. 부지런히 오르내렸어요. 그 위에서 360도 조망하는 것도 볼만한 광경이었고요. 무어인 궁전을 볼 시간이 없어 아쉬웠지만 신트라 관광을 마쳤답니다. 돌이켜 보면, 멀리 이국 타향에서 수울수울 잘 풀리다가도 딱 막히면 구세주가 나타나 길이 잘 풀렸습니다. 그것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는 우리들이 지혜를 짜 모아 자구책을 강구하며 지내왔어요. 가톨릭교회에서는 우리 각 자에게 항상 수호천사가 옆에 있어 도와주고, 성세 때에 받은 본명 성인도 지켜봐주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걸 잘 못 느끼고 그 고마움을 인식하지도 못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나이 들면 맘이 약해진다더니, 그래서인지 이젠 수호천사와 본명 성인에게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신트라 역과 숙소 중간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려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 자리가 없으니 길가에 앉으라고 합니다.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가에서 먹은 저녁식사는 좋은 편이었어요. 어리가 엊그제부터 삼락회 카페에 보내고 있는 여행기와 사진에서 와인 잔을 들고 건배하는 모습이 실렸습니다. 그걸 보고 부럽다는 댓글을 다는 분이 있었는데, 자칫하면 순례길에 나선 사람들이 술맛에 길들여졌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겠어요. 이 점에 대하여 이해를 구하고 앞으로는 그런 사진을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까미노길을 잠시 벗어나 세계적으로 이름 난 유명 관광지에 왔더니, 시설 좋고 아침도 부풰식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숙박비는 2인 1실에 125유로- 우리 돈으로 15만원입니다. 거금은 아니오나 매일 6,500원에서 13,000원꼴인 5~10유로만 지불하다보니, 벌벌 떠는 졸장부가 되었나 봅니다.
버스로(리스본- 포르투), 기차로(포루투- 브라가) 기도도시 브라가 가다
2018. 10. 3(수)
9시에 배낭을 메고 신트라역에서 리스본 행 기차표를 끊고 기다립니다. 출근 인파가 지나간 뒤라 처음엔 텅 비었던 차 안에 사람들이 들어찼어요, 포르투갈 여인네들은 머리색깔과 귀고리, 반지와 손톱 손질,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습니다. 제 앞에 여배우 못지 않게 차린 미녀가 앉았습니다. 리스본이 가까워지자, 윤 단장님은 앞에 앉은 부인에게 포루투 행 기차의 시발점에 대하여 물으시는 것 같았어요. 자신이 없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니, 문 옆에 서 있는 신사분에게 물으셨습니다. 갑자기 리오?라는 다음 정거장에서 모두 내려 환승해야 한다고 명하셨어요. 기차에서 내려 역무원에게 포르투행 플랫홈 가는 길을 물으니, 바로 앞 출구를 가리켜주었습니다. 에스커레이터를 타고 올라갔어요. 거기는 환승역이 아니고, 버스터미널이었답니다. 매표소에서 포르투행 버스표 5장을 사고, 배낭을 짐칸에 실은 후에 고속버스 맨 뒷자리에 탑승하였어요. 벤츠회사 제작 버스여서 기분이 좋았지만, 기차 환승역이 버스터미널로 어떻게 바꾼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10시 30분 발차이고 200Km가 넘는 장거리 버스 여행은 두 시간 후에 작은 도시로 나가더니 5분간 화장실 갈 시간을 주었어요. 다시 고속도로로 나가는데 와이파이가 통하는가 봅니다.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어리는 독학으로 와이파이를 개통하여 사진 2장을 발송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여기는 10월 3일 20시14분이니 어제 개천절 휴가를 즐기는 얘들하고 통화를 한 생각이 나는군요. 여기는 8시간이나 늦게 갑니다. 버스 여행은 출발한 지 3시간 후에 포르투 버스종합터미널 도착으로 끝났어요. 버스터미널에서 밖으로 나와보니 아우구슨가?하는 지하철역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조금 걸으니 길가 카페가 있어요.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요. 점심을 잘 먹은 것 같아요. 나중에 고급 음식점에서 맛있는 식사를 할 때, 생각해보니 그 땐 참 서민적이었던 것 같았답니다.
우리 5형제는 힘이 생겨 포르투 대성당을 찾아 대로변을 걸었어요. 도중에 거창하게 생긴 성당 앞에서 인증 샷도 하고, 길가 카페에서 건너편 쌍탑이 대성당인 줄로만 알고, 카페 콘 레체를 한 잔씩 마셨습니다. 길가에는 단체로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서로 마주 보면서 말이죠. 포르투 중앙역은 옛날 성당 건물을 개조한 역사驛舍이고 시발점입니다. 많은 인파도 구경감이죠. 왼쪽에 대성당 건물이 보여요. 걸어서 찾아갔더니, 입구를 막아놓고 성당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라고 하네요.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들어가서 성체 조배하고 어련히 알아서 기부금을 내지 않겠어요? 그런데 미리 내랍니다. 그런 곳에는 주님이 계시더라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광장에서 사진도 찍고, 안내소에 들어가서 정보도 알아보았답니다. 한국인 아가씨도 반갑게 만났는데, 분명히 한국 아저씨인데 우릴 보고도 못 본 척 하는군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더니, 우리 같은 노인데들 만나 봐야 존대해야 되고 간섭 받기 싫어서 그러는 것만 같이 생각되었답니다. 제발 어리의 생각이 틀렸기를 바랍니다. 포르투 4대 도시에는 각각 특색이 있어요. 포르투에서는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고, 리스본에서는 벌어놓은 돈을 소비만 하기 바쁘답니다. 코임브라는 교육(대학)도시로 13세기에 세워진 코임브라대학교도 유명하고, 브라가는 성당도 많아 기도를 많이 하는 도시랍니다. 대성당을 나온 우리는 포르투 중앙역에서 기도 도시 브라가 행 기차표를 사서 제 시간에 들섭니다. 10월 초인데, 학사복과 모자를 쓴 학생이 보이니 물었더니 ‘오늘 졸업했다네요.’ 축하한다고 얘기했는데, 그 모습을 담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었어요. 초상권 침해로 걸리기 쉬우니, 꼭 찍고 싶으면 자기 일행을 찍으면서 배후로 나오게 하면 걸려도 무사통과할 수 있답니다.
브라가 역에 도착하여 미리 조사해서 예약한? 민박집 호스텔을 찾기로 했어요. 그 집을 말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좀 이상한 사람이 자꾸 손짓을하며 건너편을 가리킵니다. 믿을 수 없어 일단 큰길을 건넌 후에 길가에서 묻기 시작했어요. 노인들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우리의 구세주로 나타났어요. 네덜랜드 아가씨들인데, 우리 중에 오! 히딩크, 오! 소록도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하면서 아일 러브 네덜랜드를 외쳐댔답니다. 아가씨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여기라고 지도상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오! 고마워요. 그것만도 고맙지만 솔직히 어떻게 찾을지 막막하였답니다. 그런대 두 아가씨가 뭐라고 의논하더니, 일행에게 먼저 가라며 우리를 앞에서 인도引導하였어요. 성당 옆 건물 앞에 서서 ‘여기’라고 하며 인터폰을 눌러 통화까지 해 주었습니다. 기도가 잘 듣는다는 브라가에서 우리에게 천사天使 둘을 보내주셨어요. 과연 브라가에서 어리와 우리들은 어떤 소망을 빌어야 할까요? 한 번 기대해 보죠.
여사장님은 우리를 2층(여기서는 1층)을 지나 3층(2층)으로 안내하셨어요. 방도 많고 샤워실도 여러 곳에 있는데, 그날따라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4층이 살림집인 것 같은데, 사장님은 열쇄를 맡기고 먼 데로 출타했어요. 샤워도 하고 짐을 내려놓은 후에 밤 나들이를 나가, 분수가 솟아오르는 광장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광장에서 음악회가 막 끝나고 강평회를 하고 있었어요. 어두컴컴한데도 곳곳에서 집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람들이 앉아 있었어요. 말도 통하지 않고 피곤한 몸을 쉬려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습니다. 내일은 이곳 브라가에서 유명한 봄제수스 두몬테교회 BOOM JESUS를 찾아보고, 우리가 포르투게스를 시작할 Barcelos 바르셀로스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브라가에서 기차로 나인Nine역까지 가서, 내려서 Tamel행 기차로 환승해야 합니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점이 있어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까미노 포르투게스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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