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삼남,영남,관동길

6인방이 충남 삼남길 제6길 공산성에서 길이 막혀 되돌아오다(18) /2014. 9.16(화) 15:53 고마나루명승길-공산성길- 18:00공주출발-19:45서울

august lee 2014. 9. 16. 23:28


공주시에서는 이 길을 고마나루명승길이라고 부르고 금강 고수부지 산책로와 공산성까지도 이어집니다. 뚝길에서 명승길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있어요 연꽃 대신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다리 밑을 통과하여 큰길에 오르니 우측으로 퇴석退石 김인겸金仁謙 시비詩碑에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김인겸은 조선조 영조때 선비로 은퇴하여 금강 가에서 지내다가 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를 왕래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그린 장편 기행가사를 썼습니다.


금강교를 건너 웅진탑熊津塔에서 인증샷을 하고 보니, 고운孤雲 최선생崔先生 시비詩碑에 최치원 선생이 쓴 시가 나와 있어요. 공산성에 이르니 정문에 삼남길 꺾쇠표지가 보입니다. 그런데 문안으로 들어서서 삼남길을 물으니 문화해설사라는 분이 처음 듣는 말이라네요. 옥룡동 공주대교 옆으로 이어지는 그런 길은 없답니다. 정문으로 나와서 근무자에게 물으니 그런 길은 있는데, 지금은 공사중에서 막아놓았답니다. 시간도 없어서 왔던 길로 되돌아서서 금강교를 건너 공주버스터미널로 걸었어요. 오후 5시 20분에 터미널에 도착했으니, 오전 8시 50분에 차령고개를 출발한 지 8시간 30분만입니다. 어리의 만보계는 10키로에서 작동을 멈췄지만, 제4길 차령고개길 6키로, 제5길 보물길 17키로, 제6길 공산성길 3키로 등을 합해 보면 26키로를 걸었어요. 그리고 삼남길은 아니지만 공산성에서 공주버스터미널까지  2키로를 더 걸었으니 총 28키로를 걸었습니다.


임립미술관에서 공산성까지 길을 알고 있으니 다음 기회에 걸으면 됩니다. 지난 번 하행때에 옥룡동에서 공주대교 밑 금강 가로 이어지는 삼남길 리본을 확인하고 뒤돌아 그 리본을 따라 걸어서 혈흔천길을 찾을 수 있었어요. 거꾸로  상행길을 걸으면 공산성을 통과하는 삼남길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주 9차 삼남길 걷기에서는 공주버스터미널에서 봉명교차로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경천까지 제7길 춘향전 옛길(10키로), 경천에서 노성향교를 지나 하도2리 버스정류장까지 제8길 노성고을길(14.4키로)을 걷습니다. 그리고 사정으로 보아 춘향전 옛길에서 조금 벌어놓은 시간을 모아 제9길 은진향교길 중에서 마구평리(부적면사무소)까지 걸을 예정입니다.



오후 6시에 공주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버스로 20분만에 차령터널에 이르렀어요. 하루 종일(8시간30분, 총 510분) 걸은 거리가 버스로는 딱 20분이니, 우리 6인방은 오후 6시부터 잠깐 동안에 자신보다 25배나 더 빠른 타임머신을 탄 셈입니다. 헬기나 비행기를 이용했더라면 더 순식간이겠죠. 서영종 님께서 그걸 계산하더니 깜짝 놀라시는 것이었어요. 그렇습니다. 우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며 우리 자신의 능력보다 25배 이상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새삼 놀라지만 여러 번 경험해 보면, 느림의 철학과 게으름의 미덕, 그리고 걸어다니는 기쁨과 보람까지도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빠르다고 뽐낼 것도, 느리다고 기 죽을 것도 없어요. 오히려 느림에 감사하고, 제 분수를 알게 되지 않을까요? 뚜벅이의 지혜나 건강한 두 발의 고마움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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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과 수험생을 위한,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해석과 핵심정리 및 문제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의 창작 배경은 일본의 관백(關白) 원자중이 물러나고 그 아들인 원가치가 관백의 자리를 계승하고 수교를 요청하여,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고 영조 39년에 일본 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를 왕래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그린 장편 기행가사입니다.


  전체의 여정을 보면 영조 39년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항,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를 가로 질러 이듬해 1월 20일 오오사카에 도착, 목적지인 에도(지금의 동경)에는 2월 16일에 도착합니다. 돌아오는 길도 이와 같아 7월 8일에 도착하였으니, 11개월에 걸친 수륙 만여 리의 장거리 여행이었습니다.


  일동장유가는 '가(歌)'로서 형식은 가사에 속하지만, 내용은 광의의 수필 문학인 기행문에 속합니다. 작가의 객관적이고 예리한 관찰과 비판, 기발한 위트와 해학 등을 맛볼 수 있다는 점, 정확한 노정과 일시를 기록한 점, 상세한 기상 보고와 자연 환경의 묘사가 나타나며 여행 중의 생활과 문물, 제도, 풍속에 대한 견문이 자세히 기록된 점 등에서 문학적,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0년 전 우리 외교 사절단의 규모와 한일 양국의 외교 방법, 임진왜란 이후 아직도 가시지 않은 대왜(對倭) 감정 등을 읽을 수 있게 하므로 외교사적인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첨부파일에 전문을 다 싣지 못하고, 문학 교과서에 자주 제시되는 부분만 수록하였으며, 가급적 해석은 각주로 처리하였습니다. 일부 해석도 붙여놓았습니다.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풀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파일은 PDF로 작성하여 스마트폰에서도 열립니다.

  우리의 눈으로 타국의 풍물을 볼 때 우리는 자칫 중심을 잃고 자문화 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감정은 다분히 이중적입니다. 민족적 감정으로 항상 일본을 경멸하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그 한편이라면, 또 다른 한편은 그들의 산업과 경제에 대한 동경의식입니다. 이 이중적 시선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색이라고 하여 일본 풍을 싫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일본 스타일이 우리의 삶속에 많이 녹아 있습니다. 일본 만화, 일본 게임, 일본 풍의 음식점 등등. 그리고 일본의 원천 기술 없이 어떻게 우리가 IT 강국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충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찬찬히 살펴보면 여전히 현재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시선이 과거로만 향하는 것도 아름답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이 두가지 시선이 항상 균형을 이룰 때 더이상 아픈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믿음이 있는 이웃을 만나고, 믿을만한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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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꺾쇠표시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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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