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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유스호스텔 앞에서 출발! 대화를 향하여 앞으로!!
(화보 1)
2017년 5월16일(화) 오전 7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안흥- 정선행 첫차를 타고 6인방이 출발했습니다. 박찬도, 서영종, 이창조, 정정균, 진풍길, 황인우 님이예요. 08:32 안흥에 도착하여 택시 두 대(16,000원씩)로 나누어 타고, 서초수련원(탑승 동행이 있었음)과 문재터널을 지나 평창유스호스텔 입구에 도착했어요. 터널을 차량으로 통과하여 당일 대화까지 38Km를 10 여 킬로미터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은 2일을 잡아야 할 정도로 거리가 떨어져 있답니다.
08:40 평창유스호스텔에서 방림을 거쳐 대화까지 관동대로 3일째 도보순례가 시작되었어요. 해발 700m라는 푯말을 보니 대모산 두 배보다 더 높은 곳을 걷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답니다. 운교 칡사리 채소단지와 더덕 판매라는 광고가 보이는데, 길가에는 넓은 밭에 배추와 양배추와 더덕이 자라고 있어요. 42번 일반국도에는 평창과 정선으로 다리는 차들이 많아서 걷기에는 좋지 않습니다. 국도와 겹쳐지는 '서동로'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라네요.
운교삼거리를 지나니 백덕산 등산 안내도가 나타납니다. 첩첩산골 산하를 즐기며 걷고 있는데, 간벌을 이유로 굵은 소나무를 목재로 만들어 차량에 싣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어요. 기다란 밭이랑에 모종을 심는 십 여명의 여자 농부님도 있고, 하늘마을 염소농장과 같은 대형 입간판도 보입니다. 오전 10시경에 목조 이동 주택을 짓고 있는 여우재 옆에서 커피도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첫 휴식사간을 가졌어요. 날씨가 싸늘해서인지 도심지에서는 다 시들어가는 철쭉꽃이 여기에서는 예쁘고 싱싱하게 피어있습니다. 서동를 따라 고개를 넘으니 버스 정류장에 사그네라는 동네 이름이 나타납니다. 지도에는 사그내인데 현지에서 사그네라니 그 이름이 맞겠죠?
(화보 2)
42번 국도 확장공사가 한창이네요. 뒤돌아보니 안흥 18Km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입니다. 여주까지 104km. 넓은 더덕밭이 보이고 배추도 잘 자라고 있어요. 방림송어횟집이라는 간판을 보니 안흥면을 벗어나 방림면에 접어들었습니다. 평창 운교리 밤나무 안내판 앞에 발길이 멈췄어요.
운교리 雲橋里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 밤나무 앞에 운교역창 雲橋驛倉의 마방 馬榜이 있었답니다. 성황당이 옆에 있어서 이 밤나무가 제대로 보존될 수 있었나 봐요. 길가에 들림집이라는 식당 간판을 보시고, 박찬도 님은 들름집이 표준어라고 지적해주셨습니다. 길가에 형형색색의 철쭉꽃이 활짝 피어있고 금빛 나는 앉은뱅이? 나무도 화려합니다.
길 건너 주유소는 문을 닫고 폐허가 되었는데, 휴식시간이 될 무렵에 진풍길 선발대장님이 우리를 커피 전문점으로 안내하셨어요. 미군 판쵸 우의를 커튼으로 달고, 서양 자동차 번호판과 각국 화폐, 오밀조밀한 실내장식을 하여 눈에 띕니다. 도시보다 더 비싼 커피를 선발대장님이 사 주셨습니다. 길을 걷다가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 쉬면서 눈과 입이 호사한 일은 퍽 드물었어요. 10년 전에 한사모 회원 십 여명이 7일간 제주도 해안을 일주할 때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부근 커피집에 들른 생각이 났답니다. 감사합니다.
고냉지 채소밭과 그림 같은 집을 지나 가며 사진 몇 장을 찍다보니, 길 안내를 한답시는 어리는 맨 후미가 되어 부지런히 따라갔어요. 100 여 평이 넘어보이는 저기 비닐하우스엔 무얼 심어서 키우는 지 궁금했습니다. 길가에 작은 돌멩이로 가즈런히 축대를 쌓아놓은 모습이 눈길을 멈추게 했어요. 3~40m가 넘어보이는 저기 돌무덤에 정성과 끈기와 노력이 배어 있었고 어찌 보면 예술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선발대를 따라 구부러진 옛길로 돌아가보는데, 산사태가 나서 바위 덩어리와 잔돌들을 치우려는지 포크레인이 세워져 있었어요. 길가에 세워진 야광 신호판은 부러진 것도 더러 보이고 아예 뽑혀서 드러누워있어 보기 흉했습니다. 정선도로관리소에서는 제대로 순찰을 하는지..... '어리야,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너나 잘 걸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앵배추밭 옆으로 마을길이 뚫려있는데, 선발대는 그걸 못 보셨는지 자동차길로 걷고 있었어요. 어리는 그 길로 직진하는데 냇물 소리가 맘을 편하게 해줍니다. 산신령이 우리를 지켜보다가 냇가로 인도하여 자연의 소리를 선물로 보내주시는 것같군요. 착각은 자유라는데, 무작정 걷기보다는 천천이 음미하며 옛 사람들이 등에 이고지고 길을 걷던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개 짖는 소리에 명상 아닌 망상이 달아나버리고, 만남의 광장을 지나 교차로에 이릅니다. 평창농협 농산물 산지 유통센터를 지나니 우측으로 뇌운계곡 가는 길이 나오고 민박집들이 나타났어요.
좌측으로 백섭봉 등산로 입구를 지나니 오른쪽으로 강줄기가 흐르고 있어서 쭉 뻗은 냇가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아니. 누가 부르는 것같이 그냥 끌려갔어요. 냇가를 구경하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저쪽 큰길에서 진풍길 선발대장님의 큰소리가 쩡쩡 울려퍼지네요. 샛길로 빠져 나가보니, 방림메밀막국수집 옆에서 우리 일행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잠깐 사이에 식당 정보를 입수하여 우리 옆에 있는 '송가네 밥상'으로 들어갔어요. 방림면사무소가 있는 꽤 큰 동네입니다.
(화보 3)
송가네 밥상집에서 양푼 김치찌개와 고등어 조림을 3인분씩 시켰어요. 서영종 고문님께서 점심과 시원한 맥주를 사 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식사 후에 큰길에 나와서, 아침에 우리가 타고 왔던 노선을 되돌아 정선- 평창- 방림- 안흥- 새말- 동서울로 되돌아 가는 강원흥업 버스를 만났어요. 이 노선으로 두메산골 교통이 이처럼 편해졌습니다. 이제 영동고속철도가 다니기 시작하면 왕래가 잦고 도시인들이 자연과도 더욱 가까워지겠죠?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인데 머지 않아 완공이 되겠지만 보행자들을 위한 배려는 아직 없는 모양입니다. 방림5리 입구에 중방림이라는 비석이 세워진 것을 보니, 아직도 방림면을 한참 동안이나 걸어야 하겠군요.
밀이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자랐어요. '저렇게 키만 커서는 알곡이 잘 여물까?', '아마도 보리처럼 동물 사료용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정선 43Km, 영월 43Km, 평창 10Km라는 이정표가 나타났어요. GS칼텍스를 지나니 좌로 진부와 평창 IC, 우로 영월, 정선 가는 갈림길입니다. 방림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조금 더 걸으니 여기에도 문을 닫은 주유소가 있어요. 2층집 공터에서 손바닥보다 더 크게 자란 취나물을 보고 놀랐습니다. 같은 종자도 비료나 환경에 따라 저렇게 차이가 많은가 봐요.
냇가에서 쉬다가 효석문학 백리길 안내판을 보았는데, 그냥 건성으로 지나쳤습니다. 그 길이 방림에서 대화를 거쳐 장평과 봉평으로 이어지는 도보길이었어요. 자동차길로만 대화까지 가서 숙소인 청룡산 가든의 주인 말을 듣고 식사 후에 산길을 걸어 귀가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42번 국도가 아니라 31번 도로이군요. 옛날 짜장집을 지나서 방림4리는 달머리 구두미라는 비석이 말해줍니다. 교차로를 지나서 사조거리부터는 차도 옆에 나무 데크로 보행자 도로를 만들어 놓아 걷기가 편해졌어요. 같은 개천인데 이젠 대화천이라고 씌여있군요. 다리 부근에서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만보기에는 3만보 (21Km)를 걸은 걸로 표시되었어요. 평창대로라는 푯말이 보입니다.
(화보 4)
평창대로에서 좌우로 반정1길이 갈라지고, 조금 더 가니 연이어 효열비와 효자비각이 나타납니다. 이 동네에서 예로부터 효자와 열녀가 많이 나왔나 봐요. 길이 조금 넓어지니 좌측 가장자리에 빗선으로 보행자 도로 부문을 표시해놓았습니다. 이런 것만도 교통사고를 줄이고 걷는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조치입니다. 이제까지 걸으며 이정표에 장평 몇 Km라고 표시되어 있으면, 제 나름대로 대화에서 장평까지 9Km이니 거기에서 9를 빼면 대화까지 거리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안흥에서 방림을 거쳐 대화에 이르는 이 구간은 사전 답사를 하지 못하여 짐작만 한 것이죠.
농수산물 유통센터가 나오고 곧 이어서 우물집 막국수집 식당입니다. 그 마딩에서 쉬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대화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으니, 이 아래로 2~3분만 내려가면 된다고 대답했어요. 어리는 '2~3Km 쯤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있나' 깜짝 놀랐습니다. 커븟길을 돌아가니 아! 글쎄 개천 건너편에 대화마을 모습이 눈에 익어보였어요. 실제로 와 보지 않으면 아무리 도상 연구를 많이 하여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우물집 막국수집은 어리가 지도에서 찾아서 민박하느냐고 물었던 곳이고, 청룡산 가든 펜션이 있다는 정보도 입수했었어요.
2~3킬로나 남았다는 꿈에서 깨어나니 아프던 다리도 씻은 듯이 나았고 절로 힘이 생깁니다. 대화마을 큰길을 우리 여섯이 활보하다가 주민에게 청룡산 가든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주셨어요. 철판으로 만든 다리를 건너서 청룡가든으로 진입하다가 선발대장님과 정정균 님만 들어가시고 남은 일행은 기다리기도 하였습니다. 숙소를 정하는데는 한 두 분만 있으면 족하지요. 그런데 진풍길 선발대장님은 가타부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전화만 하다가 우리에게 손짓하십니다. 주인이 출타중이어서 곧 귀가한다니 함께 기다려보기로 한 것이죠.
가든 페션 앞 마당에는 철쭉이 활짝 피어있고 자연 경관도 참 좋았답니다. 조금 후에 주인이 오셔서 방을 보고난 후에 우리는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합의하였어요. 방 하나에 마루 하나인데 12만원을 조금 깎아주셨습니다. 여장을 풀어놓고 저녁 식사를 하려고 대화마을로 건너가서 고모해장국깁과 시골식당을 찾았어요. 먼저 눈에 띄인 대화성당을 먼 발치로 보고, 손님들이 많은 시골식당을 지납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이름 난 대화장터를 찾아보고 차부- 버스터미널까지 순방했어요. 아뿔사! 모텔도 있고 여관도 두 세군데 있는데, 지도에 없으니 없는 줄로만 알았군요. 그러나 양푼이 24시 식당을 내일 아침 식사 장소로 정하여 아예 예약하고 돌아섭니다.
다시 시골식당으로 되돌와서 우리도 고기를 좀 먹으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된장찌개가 곁들여 나온다며 백반(7,000원)을 권합니다. 먹어보니 맛있고 반찬도 깔끔하였어요. 어리가 밥값을 냈어요. 청룡가든 사장님이 귀갓길에는 가든 앞 도로에 차들이 쏜살같이 달려서 위험하다고, 버스터미널 쪽에서 다리를 건너면 산길이 있으니 그걸 권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식사후 동네 놀이터에서 주민과 이야기하는 중에 차를 타고 오면서 걸어오는 우리 일행을 보았다네요. 하여, 서영종 님과 얘기하면서 '죄 짓고는 못 사는 세상이다'는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산길을 찾은 것이 큰 수확을 얻게 되었어요. 땀띠공원 앞 산길은 효석 문학 100리길로 장평과 봉평 기념관으로 이어졌어요. 어리도 답사 때 자동차길을 걸으며 힘들어 개천 건너 동네 마을길로 가야겠다고 맘 먹었지만, 이효석 100리길임을 알고 걸을 수 있었답니다.
수퍼에서 생수와 맥주와 안주를 사 와서 가든 앞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7시간 동안에 4만 보(28Km)를 무사히 걸은 축하 파티였습니다. 택시로 안흥에서 문재를 통과하여 평창유스호스텔까지 12Km를 포함하면 40Km이니 이틀을 잡아야 할 코스이죠. 그것도 사전 답사 없이 걸었지만 칠십 대 후반과 팔십대 노장들이 다른 길로 잘못 들어서서 헤맨 일도 없이 잘 걸었습니다. 대화마을에 와서 정보가 부족하여 모텔이나 여관에 들지 않았던 점과 방이 너무 더워 문을 열어놓고 자는 바람에 감기 걸린 도반이 계신 점은 고개 숙여 시과 말씀 드립니다.
114 06:28
121 07:09
`128 08:32 안흥버스터미널
135 08:40 서초수련원
142 08:45
148 08:57
155 09:04
162 09:11
169 09:14
176 09:25
183 09:35
부부가 모종을 심는 법을 잠깐,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힘들겠지만 효율적으로 작업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긴 푸대가 달린 기구 끝을 비닐 사이의 구멍에 꽂으면 아내가 모종 하나를 푸대 속으로 세워서 집어 넣습니다. 기구를 땅에 사알짝 밀어붙여서 그 끝이 벌어지며 모종이 땅에 심어지네요. 발명품이겠죠? 이름이 뭘까 궁금해요.
190 09:43
여우재 광장
197 10:00 여우재
200 10:0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