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진리崇眞里 3층 석탑 입구를 지나니 임천출장소이고 그 다음 동네가 부산대 캠퍼스가 자리잡은 용성입니다. 캠퍼스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했어요. P님이 내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를 비우면, 6인방이 대신하여 그 자리를 매꿔야 합니다. 밀양역에서 오후 7시에 떠나는 기차표를 예매해 놓으셨어요. 내일 밤에 다시 뵙기로 하고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우리 6인방은 오후 4시에 또다시 새로운 고갯길을 올랐어요. 아하, 길 가에 세워진 푯말에 밀양역- 삼랑진 국토 건설공사라고 써 있어요. 삼랑진까지 11키로가 남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임천- 용성- 칠성으로 써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이 코스를 7K 걷는 동안에 노선 버스는 한 대도 못 보았습니다. 용성보건진료소를 지나는데, 이곳 벼는 아직 제대로 익지 않아 황금 물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군요. 밀양 10K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이니, 그럼 밀양 시청에서 삼랑진읍사무소까지 20K가 더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리가 도상에서 측정한 거리는 15K였는데, 5K나 차이가 생겼나요? 오후 5시가 넘어서 해가 누엿누엿 서쪽으로 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6인방이 가야 할 길은 8키로나 남았습니다. 거기에다 아직도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어요.
한 굽이를 지나며 "저기가 마지막 고개이고 거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 나오겠지!"하고 올라가 보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옵니다. 우리 7인방 중에 5인이 2012년 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굽이굽이 또 굽이굽이 고갯길이 생각났어요. 도로표지석을 보니, 22년 전인 1993년에 도로확장포장을 했군요. 아! 이제는 아껴두었던 힘을 모두 소진해서라도 이 고개를 넘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발걸음도 조금 더 빨라지는 것같아요.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아요. 그래도 이 찍쇠는 셔터 누를 힘도 없어서 그냥 오르기만 했어요. J선발대장님만 힘이 넘쳐납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어리의 카메라를 받아들고, 힘겹게 올라오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아내시군요. 그런 힘이 그냥 공짜로, 저절로 나옵니까? 매일 조깅으로 단련된 몸과 심폐기능이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산불조심 푯말과 함께 밀양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지 표시판이 세워져 있어요.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 8월에 밀양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 검속자들을 구금했다가 미전리 미전고개로 끌고 와서 집단 학살한 장소라고 씌여있어요. 원한 맺힌 영혼들의 한이 서린곳입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어요. 저 앞에 보이는 산을 또 넘어야 하는가? 하고 낙담하려는 순간에 좌측을 보니 계곡이 나타나고 내리막길입니다. 아! 이제서야 헐떡이던 허파도 조금 쉴 수 있겠네요. 조금 더 내려가니 삼랑진 5K라는 작은 표지판이 있어요. 어리는 가까이 다가가서 칡넝쿨을 걷어내고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멀리서 그 표지판을 읽으신 S님은 참 눈이 밝기도 하십니다.
정정균 님이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시니, 저명한 지형지물 부근에서 다시 연락을 달라네요. 조금 더 내려가니 삼랑진 4K 지점에 정토사 극락전과 효심추모공원 정문이 나옵니다. 오늘 걷기 상황이 끝났어요. 택시 2대에 분승하여 삼랑진역전 부강장 여관까지 이동하고, 저녁을 먹을 고향집 식당도 소개 받았습니다. 핸드폰을 제 때에 잘 활용하셔서 7인방을 지원해주신 정정균 한사모 사무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로 동대구역- 상동역까지 이동하여, 밀양에서 점심 먹고 계속 걸어왔으니, 무리하였고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40,000보에 28Km를 걸었어요. 참으로 긴 하루였고 영남길 마무리하는 3일중 첫 날이자, 최선을 다한 보람된 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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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오르막 고갯길이 끝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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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