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 이야기B

아직도 나에겐 산너머 남촌땅인 광주- 벌교 나들이 화보

august lee 2009. 9. 17. 23:42

2009년 9월17일(목) 오전 7시30분 동서울 터미널에서 광주행 버스를 탔다. 4시간만에 광주버스터미널에서 목포에 사는 처제와 합류하여 바로 벌교행 버스를 탔다. 11시30분에 출발하여 남광주와 화순, 순천 송광면과 보성강을 지나서 오후 1시경, 벌교에 도착하였다.

 

 남광주 학동은 내가 1949년부터 1960년까지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11년을 살았던 고향아닌 고향이다.

 거기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산너머 남촌은 별로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나들이에 집사람과 처제까지

 동행이 되어주어 함께 다녀왔다. 화순과 동복, 보성강과 순천 송광면, 그리고 남해안 벌교까지다.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주요한 무대가 되었던 곳이 아닌가? 산을 굽이굽이 돌아서 벌교에 이르니 상당히 넓은 평야지대이다. 목적지는 벌교 삼성병원인데, 가만히 듣고 있던 뒷쪽 승객이 친절하게도 택시를 타라고 가르쳐준다. 낯설은 고장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오랫만에 만난다.

 

벌교는 꼬막이 유명하다. 음식점마다 꼬막반찬을 써붙여 놓았지만, 정작 꼬막은 11월이나 12월, 날이 추워지는 겨울철에 나오는 특산물이다. 꼬막축제도 10월30일인가부터 시작된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가! 남광주에서 바라본 남촌을 오면서 우측 서쪽만 바라보았으니, 갈 때는 우측에 앉아 동쪽을 구경해야지! 하루종일 버스만 타고 11시간을 달렸다. 그래도 가보고 싶었던, 궁금하였던 곳을 누빈 하루였으니 그런대로 이번 기회가 고맙고 감사하다. 욕심같아서는 하룻밤이라도 머물다 갔으면 좋겠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일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서대전을 조금 지나 벌곡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간다.

 

 광주를 지나면서 본, 골목길 담장이 특이하게 공력을 드렸구나.

 

 

 

 

 산, 산, 산 .... 첩첩산중이다. 동쪽에 있는 무등산 자락은 볼 수 가 없다.

 

 

  황금벌판이 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귀경길에 찍은 동쪽 풍경이다.

 

 

 

 

 

 

 여기는 딸기묘 생산단지로 유명하다는 데 옛날 승주군인 순천시인가?

 

 

 누렇게 황금물결을 이루기 시작한 논이 참 보기에 좋다, 대풍년이라고 쌀값 걱정하는 소라가 높지만...

 

주암과 벌교 구간은 강따라 꾸불꾸불 험하지만 아름다운 길인데,

직선화, 고속화 작업을 하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송광정류장은 버스가 꼭 들리는 곳이다. 이 부근에서 서재필 박사의 기념비를 본 것같다. 여기가 고향인가?

 

 

  여기 부근에 주암댐이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가 보성강이라니, 물이 갇혀진 댐 상류일까?

 

 

 

 

 

 

 

 

 

 

 

 도로변에는 백일홍 나무가 심어져 있고 빨간 꽃이 피어있다.

 

 

 

 저기가 무등산 자락인 것 같다.

 

 

 화순에 왔다. 화순(和順)! 이름이 참 부드럽고 좋다. 그러나 첩첩산중에 들러싸인 곳이다. 도시계획 필요?

 

 

 남광주역 부근인데, 아직도 기차가 다니긴 다니는가? 지하로 길이 있는지 궁금하였다.

 

 광주천이고 좌측에는 학강초등학교가 있었다. 동생들의 모교이다.

 

 광주 고속버스터미널은 '유스퀘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도청이 무안으로 옮겨간 후에 광주 경기가 침체되어 있다고 했는데,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기아자동차공장이 바로 옆에 있다. 옛날에는 이문환 씨가 만든 '아시아자동차' 였는데...

 

 여기가 극락천인가? 이 부근이 너무 많이 변해서 잘 모르겠다.

 

  광주-동서울 우등고속버스 요금은 26,600원이다. 버스 승객이 열 댓명이었던가?

 

 광주-벌교는 버요금이 7,800원이다.

 

 

 

 

 

90세로 생일날 세상을 떠나신 이형재 어르신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편히 가셔서 쉬십시오, 농촌을 지키느라고 농사지어 매실이랑 감이랑 자식들과 친족들에게 보내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7남매가 잘 되어서 지내니 떠나가시는 걸음이, 마음이 훨씬 가벼우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카들에게까지 베풀어주셔서 아직도 저희집에는 매실주가 남아 있어요. 

그 경황중에도 가을에 감을 따서 보내주시겠다는 이모님의 말씀에 고개 숙여졌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