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단련/산티아고 순례보고

02. 쥬비리 - 에즈키롯즈 - 팜프로냐 / 2012. 5. 7 (월)

august lee 2012. 7. 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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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짐을 다 싸고 출발 직전에 디카가 보이지 않아 배낭을 다 풀어 놓으니 저 밑바닥에서 뚝 떨어져 나왔어요. 저 때문에 출발이 10분 늦어졌어요. 얼마쯤 걸으니 시장기가 도는데도 바는 문을 닫아서, 이리 저리 묻고 물으니 문을 연 바가 있답니다. 겨우 식당을 찾아 빵을 먹고 출발했어요. 사과 2개와 오렌지 2개를 사서 각자가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6인방이 2:4 두 팀으로 갈라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Y와 어리는 앞서 간 J를 쫓아 갔지만 보이지 않아 1시간쯤 지나서 20분을 쉬었는데도 후미가 따라오지 않았어요. 또 한참 가다 보니 바 Bar가 있어서 순례자들이 모두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또 20 여분을 기다렸는데도 뒤따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둘은 이거 큰일이구나 싶었어요. 둘째 날이라 아직 모든 것이 서툰데 서로 갈라지면 어떻게 합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장님이 '연습 삼아 둘씩 따로 가는 훈련을 시켜볼까?'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또, '자동차길 말고 산길이 있는데, 그쪽으로 안내할까?'하는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40 여 분을 기다렸는데도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지름길로 먼저 앞서 가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더 기다리지 말고 빨리 가서 도로와 산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합류하자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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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부부를 만났어요. 순례길에 많은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네 주민에게 물어서 아침에 문을 여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찾아갑니다.

이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죠코렛도 나누고, 사과와 오렌지도 2개씩 사서 배낭에 나누어 넣었어요.

여기까지는 6인방이 함께 걷다가 더워서 옷을 벗고 갈아 입었는데, Y와 어리가 그걸 모르고 앞질러 간 것입니다.

두 번씩이나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여 나아갔어요. 알레 5.5 키로 지점에 있는 '바'에서 순례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점심 먹을 생각도 없이 또 기다리기만 하다가 두 길이 만날 거라는 지점을 향하여 빠른 걸음을 하였어요. 그곳에서도 기다렸지만 사람들도 뜸해서 다시 앞으로 앞으로 가기만 하니, 간이 수력발전소와 큰 동네가 나왔습니다. 아차! 우리가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선두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났어요. 그때가 오후 1시 30분쯤 되었습니다. Y님이 아침에 단장님이 오후 2시 30분에는 팜프로냐 대성당에 도착해야 한다고 들었다고 하여 다른 순례자들을 따라 무조건 걸었습니다. 오후 2시 30분 경, 대성당 정문에 도착하고서야 우리가 앞선 선두라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어요.

휴대폰을 열어보니, 한국으로도 전화가 통하지 않았는데 단장님에게서 전화가 여러 번 온 것이 찍혀있었습니다. 그걸 누르니, 아 글쎄 통화가 되지 않겠어요. 휴대폰이 구세주였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셔서 대성당 정문 앞에 와 있다고 대답하니, 10분 후에 도착할 터이니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그때가 오후 3시 30분이었는데, 택시를 잡지 못해서 걸어오느라고 1시간 후에야 성문 안에 들어서는 일행 4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손을 흔들고 소리를 쳤지요. 그런데 모두가 우리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앞으로 가시면서, 서로 착오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오늘 일은 더 이상 말하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Y와 어리는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결과적으로 큰 일통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어안이 벙벙, 이를 어찌할꼬?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 최상책이었습니다.

둘째날 해프닝을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시설이 좋고 역사가 깊은 공립 알베르게에는 다섯 자리밖에 남지 않아 단장님과 박찬도 님은 다른 숙소를 정하고 우리 넷만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습니다. 1시간 후에 서로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고, 시장을 보아서 식수 등을 나누었어요. 그러고 보니 모두가 점심을 굶었습니다. 어리가 그 장본인 중 하나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되었지요. 정신이 나가고 혼쭐이 난 하루였습니다. 이런 일은 그 후에도 한 두번씩 주객이 뒤바뀌어 일어나기도 하였답니다.

쌤쌤. 우여곡절을 겪고 또 겪은 둘째날은 31,600보, 23킬로를 걸었습니다.

찻길과 산길과의 합류 지점인 것 같은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쉬면서 기다렸습니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간이 수력발전시설이 있어요.

여기서라도 멈추던가, 핸드폰을 열어 통화를 시도했더라면..... 그러나 저러나 핸드폰으로 통화를 못했으면 어찌될 뻔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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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우리 일행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야속하게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요.

이 메뉴판을 잘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앤사라다와 까르네, 그리고 후식은 아이스크림도 있는데?

대형 슈퍼마켓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