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단련/산티아고 순례보고

25.발캇세 - 루이테란 - 라 파바 - 오 세브레이로 / 2012. 5. 30 (수)

august lee 2012. 7. 21. 02:48

 

                                       성당 제대 위 현양대에 모셔진 갈리시아의 국보 오 세부레이로 성체입니다.

 

 

오늘 목표는 14킬로 떨어진 오 세부레이로입니다. 루이테란을 조금 지나니 산티아고까지 160키로가 남았다는 표지가 나왔어요. 라스 헤르레리아스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왼쪽은 도보이고 오른쪽은 자전거길입니다. '아하! 왼쪽은 자전거가 올라갈 수 없는 가파른 길이구나!'라고 생각하니 14킬로라고 얕잡아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나서 긴장했어요. 거기에서 아침을 먹고 굳은 각오로 나섭니다. 외국인들 그룹이 맨몸으로 걷는 것을 보고, '저런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오르는데 나는 할 수 없이 뒤따라가야지!'라고 생각했지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와서 호흡을 고르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올라갔습니다.

 

동해의 푸른 물결 빛나는 아침/ 찬란한 붉은 태양 새 날이 밝아 / 지축을 울리누나 희망의 노래 / 억만년 길이 빛날 우리의 조국..

 

1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도 아침에는 견딜만해서 뚜벅뚜벅 오르고 또 올랐어요. 맨몸인 외국인들이 뒤로 쳐지기 시작하니, '옳거니 그동안 등산은 폼으로 했다냐? 한번 올라보자!!'하고 박차를 가했습니다. 땀이 뻘뻘 나고 숨이 가빠왔지만, 해 볼만 했어요. 몸이 가볍고 훈련을 많이 한 J님은 나보다 훨씬 먼저 갔습니다. 한 고비를 넘기고 벤취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후미는 한참만에 올라왔어요. 거기서부터도 완만하지만 계속 오르고 또 오르는 등산 코스였습니다. 마을을 한 두군데 더 지나니 152.5킬로 지점이 나오고 갈리시아주의 경계지역 표지석이 보입니다. 지나가시던 나 신부님이 사진을 찍어주셔서 제 모습을 담을 수 있었어요.

 

길가 오른쪽에 갑자기 석축이 나타나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곳이 산의 정상이고 자동차길에다 관광버스까지 보였습니다. 오늘 목적지 오 세부레이로랍니다. 산에 오르면서 속도를 냈더니 힘이 많이 빠져나간 모양이예요. 배낭을 문 앞에 내려놓고 성당 안에 들어갔습니다. 성체현양기구가 보이고 옆에는 여러 개의 촛불이 빛을 내고 있어서, '아! 여기가 성체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곳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앞에 엄숙하게 묵상하고 있는 수도자 같은 석고상이 보여서 셔터를 눌렀는데, 어떤 순례자가 와서 말을 거니 움직이며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이쿠머니, 경건하게 기도 드리는 수도자에게 내가 실수를 하였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성체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지 못하고 잘 알아보지 못한 점도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성체의 기적이라는 것은 다른 여행기를 읽어보면 조금씩 다르지만, 14세기에 이 교회에서 일어난 성체가 썩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잘 보존되어 내려온다고 합니다.

 

배낭을 줄 세워 놓고 또약볕에서 한참 기다리다가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어요. 산 정상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저는 가르시아 된장국?처럼 생긴 요리를 엔 사라다 대신 시켰더니 큰 냄비로 하나 가득 주어서 서너 명이 나누어 먹었는데 구수한 맛이 좋았습니다. 암소고기도 맛이 좋고 가르시아 지방은 콧대가 세고 자랑하는 것도 많은가 봐요. 조금 더 내려가면 110킬로 지점부터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14킬로가 평소의 절반이지만 산에 오르고 또 내려가도 마땅한 알베르게가 없어서 모두들 여기서 숙박을 합니다. 기다림과 줄 섬, 새치기 하나 없는 서양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하루였어요. 저녁은 가게에서 볶은밥을 사다가 숙소 식당에서 볶아 먹었습니다.

 

 

 

 

 

 

 

7483

  

 

 

 

 

 카미노 길에 있는 유명한 다리들 모음

 

 

 

  

 

 

 

 

7511    26

 

 

7520

  

 

 

 

 

7529

  

 

 

 

 

 

 

 

7547

 152.5 킬로, 그때에는 그 숫자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나 신부님이 찍어주신 어리의 사진입니다.

 

 

  

 

 

7578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14세기 눈보라 치는 크리스마스 이브, 이 교회의 신부가 성탄절 미사를 올리려는데 신자가 1명도 없어 성당 문을 닫으려고 했답니다. 그 때 이 마을 골짜기에 살고 있는 한 농부가 미사에 참례하려고 눈 덮힌 산길을 힘들게 올라왔어요. 신부가 농부더러 그냥 돌아가라고 했지만 농부는 기어이 성탄미사에 참례하겠다고 버티자, 신부는 하는 수 없이 미사를 올리고 성찬을 농부에게 베풀었답니다. 그 순간에 포도주가 피로, 성체가 살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 기적의 성배(포도주 잔)와 성체 접시가 지금까지전해지면서 순례자들의 찬미를 받고 있답니다.

 

50 여 년전 광주 남동성당에서, 예비자 교리를 받을 때 들은 적이 있는 성체의 기적 이야기의 본 고장에 와서는 잘 알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그냥 스쳐지나갔으니 너무 아쉽습니다. 하오나 지금도 성당의 감실에 모셔진 성체와 다를 것이 없으니,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성체 조배를 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갈리시아 지방의 국보로 정해서 전해 내려온답니다.              

                                                                      

 

 

14세기 성체의 기적이 일어난 성당. 우측에 보이는 흉상은 에리아스 발리나라는 사람의 것이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