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삼남,영남,관동길

충남삼남길을 되돌아보고 (08) 차령고개- 정안- 공주- 공산성-강남터미널 충남 4 / 2014.9.23 (화)

august lee 2015. 4. 18. 07:44

 

 

2014년 9월16일(화) 오전 6시50분, 서울역 KTX대합실에서 삼남길 나그네 6인방이 모여 07:10 출발 대전행 케이티엑스를 타고 충남 삼남길 걷기에 나섰어요. 38분만에 천안아산역에 도착하니, 김영신 님의 지인 성유경 成有慶 사장님께서 차령고개까지 데려다 주실려고 와 계셨습니다. 천안에 오래 사셔서 길을 잘 아시지만 구도로로 차령고개를 넘어 본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미리 준비해 간 경유도를 보니 43번과 2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차령터널을 통과하는데, 터널 직전에 천안시 추모공원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추모공원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말씀 드리니, 지난 추석절 성묘를 하기 위해 그 길을 답사하셨다네요.

 

어떻게 보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어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는 사람이나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그 구석진 곳을 미리 답사까지 해 두신 일이 놀랍고, 그런 분이 우리를 돕겠다고 자원해주시다니요? 차령고개길 안내를 해주시는 성 사장님이 길을 아시니 차령고개까지 쉽게 왔습니다. 그러나 아침 출근 길이 조금 막혀서 시간은 약 40 분이 걸렸어요. 8시 40분에 목적지이자 오늘 출발지점인 차령고개에 도착하였습니다. 성유경 사장님과 김영신 님께 거듭 감사  인사드립니다.

 

8시50분, 차령고개를 내려갑니다. 도중에 찜질방과 용기(빈병) 순환센터, 터널을 빠져나온 차들이 쉬어가는 일월휴게소와 프린세스 CC 부속건물도 만났어요. 인풍리에서 개울따라 이어지는 뚝길을 걸어내려옵니다. 밤나무에서 밤들이 저절로 떨어져 몇 개씩 주웠어요. 감나무에도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노랗게 익어갑니다. 논에 벼들도 황금벌판을 이루어 장관입니다. 정안 IC를 지나서 쉬는데 시속 5키로 정도로 빨랐어요. 정안면사무소가 있는 광정교 다리를 건너, 광정장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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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8:47      성유경 사장님을 모시고 출발기념 촬영을 했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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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공주에서 정안천 뚝길 따라 차령고개를 향해 올라올 때 광정교 옆 식당에서 아점을 먹었는데, 영천정육점 식당이 생소해 보였고 광정장터길도 낯설었습니다. 어리는 공주에서 차령고개로  올라올 때와 천안에서 공주로 내려갈 때에, 이곳 광정을 두 번씩이나 들려서 뭘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기억이 아물아물해졌어요. 6월 28일 충남 삼남길이 개통되기 전이라 다른 골목을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다리를 건너 처음 가보는 보물길 어물천 코스입니다. 자연농원(가든. 낚시터)은 규모가 꽤 큰 곳입니다. 길 가 코스모스가 활짝 웃으며 6인방을 반겨주는군요. 김영신 님은 커다란 골프장용 우산을 쓰고 가십니다. 지난 번에 비 오는 날, 성유경 사장님과 태조산 부근 천안향교에서 만나 삼거리공원까지 함께 삼남길을 걷고나서 저녁 먹은 식당에서 우산을 잊고 귀가하셨데요. 그 우산을 성 사장님이 식당에서 찾아가지고 아침에 천안아산역에 가져오셨습니다. '저걸 어떻게 들고 걸으실까'  어리는 은근히 걱정했는데, 하루 종일 따가운 햇볕을 가리는 양산으로 잘 이용하셨어요. 양산을 쓰고 삼남길을 가는 남자 - 김영신 님, 아마도 삼남길에서 이를 본 받아 양산을 쓰고 가는 나그네 남자분이 또 나타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한진P&C를 지나 토끼굴을 빠져나갔어요. 쭉 뻗은 그늘진 농로길을 걸었습니다.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서영종 님이 간식과 함께 전통문양 귀이개를 선물로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수건만 해도 두 번씩이나 번번이 받기만하여 면목이 없습니다. 에코플랜트 공주 제1공장 800미터라는 표지가 보이고, 작고 정감이 넘치는 보물리교회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충남삼남길 제5길이 보물길이라는 생각이 났어요. '무슨 보물이 있을까?' 마치 숨어있는 보물이라도 찾아보고픈 맘이 듭니다. 조금 더 가니 거목 아래 동네분들이 모여서 쉬고 계셨어요. 선발대와 대화가 오가며, 우린 해남 땅끝마을까지 여러 번에 나누어 걷고 있다니까, 지금은 걸을만 하다는 대답이 나오며 우리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보물은 甫勿- 큰보, 말물-이고 보물寶物이 아니군요.

 

옳거니! 어리는 저기 초입에 작고 초라해 보이는 보물리교회와 교인들이 보물寶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물리 주민들이 보물이군요. 그런데 경로당 건물인가? 그 앞에 김승연회장공덕비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었는데 정안면正安面 보물리甫勿里 후록 後麓에 1981년 한화그룹 선영을 모시면서 다리도 놓아주고 애경사에 후원해주시는 공덕을 기린다고 했어요. 흐뭇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오는데 상수절덕길이라니 그 말도 좀 궁금해졌습니다. 한참 걷다가 정안천을 건너서 이어지는 뚝길을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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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정 낚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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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천을 건너니 제법 큰길이 나왔어요. 조금 더 가니 금방 뚝길 나뭇가지에 삼남길 리본이 달려있습니다. 농로를 지나니 오른쪽으로 천안- 논산 고속도로 정안 휴게소가 보여요. 지난 번 삼남길을 내려올 때, 차편이 마땅하지 않아 전주행 버스를 타고 정안 환승주차장에서 내렸습니다. 휴게소 뒷길에서 토끼굴을 빠져나와서 한참 걸으니 정안천 뚝길에 삼남길 꺾쇠 리본이 매달려있어 그걸 따라 공주까지 걸은 적이 있어요. 겉으로 보기엔 '깊은 산 속에 무슨 건물인가?' 하고 의심을 갖기 쉽습니다.

 

합심교合心橋를 건너니 콩크리트 정자와 새소망교회가 있어요. 정자 위에 너무 지저분하고 먼지투성이어서 교회 현관 앞 그늘에서 쉬었습니다. 동네 할머니에게 물으니 조금만 더 가서 다리를 건너면 큰길가에 기사식당에 있는데 된장찌개를 잘 한다고 알려주셨어요. 이렇게 동네분들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한참 걸으니 멀리 다리가 보여요. 가까이 가보니 북계교北溪橋 입니다. 다리를 건너고 신호를 기다려 큰길 횡단보도를 지나서 12:40 진흥기사식당에 들어갔어요. 우렁된장찌개 4, 김치찌개 2로 점심을 먹고 소맥을 한 잔씩 마셨습니다. 다시 다리를 건너와 나무 그늘 쉼터에서 잠깐 쉬다가 계속 걸었어요. 점심 먹고나서는 30분쯤 쉬어야 하는데, 항상 시간에 쫓기다 보니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초벌구이에서는 특히 시간과 여유가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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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계교 옆 간이쉼터- 김영신 님, 서영종 님, 박찬도 님, 진풍길 님, 윤기중 님, 어리는 촬영중

 

정안천 뚝길 따라 콩크리트 농로를 걸어갑니다. 그늘이 없는 곳에서는 김영신 님의 큰 우산이 큰 역할을 하여 옆 도반까지 햇볕을 막아줘요. 대추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대추가 밤색으로 익어갑니다. 흙길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뚝길을 걸어요. 가끔씩 짐 실은 차들이 다닙니다. 삼남길을 나타내는 황색 청색 꺾쇠 리본이 안내해줘요. 좌측 논위 산기슭에는 지난 번에 공사중이던 건물이 완성되어 자태를 뽐내는 것같습니다. 정안천 오인교를 지나서 좌측 뚝길을 따라 걸으니 두만천, 다리를 건너니 신촌입니다. 신촌경노정이 깨끗하여 한참 쉬었다가 갑니다. 나누어 주시는 사과와 도넛을 먹습니다. 지난 번에 어리도 여기서 혼자 쉬다가 지나가는 시골 할머니들과 이야길 나누었던 곳이죠. 길가 밭에 생강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요. 키가 거의 1미터 가까이 되는 울금은 이곳에서 잘 자라지 않는가 봅니다.

 

농로 좌우로 벼가 잘 익어가고 있어요. 우측에는 꽤 폭이 넓은 수로가 잘 정비되어 물이 흐릅니다. 축사가 지나가고 비닐 하우스 부근에서 우회전하여 풀밭 뚝길을 걷습니다.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면 하수처리장이 있는데, 밤나무에는 그물망이 쳐 있고 밤을 따거나 줍지도 말라는 경고판이 딱 버티고 있군요. 살벌한 그곳을 지나니 대단위 연꽃공원과 원두막들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공주시 장애자복지시설 아래에서 쉬었다가 메타세콰이어가 늘어선 기분 좋은 길을 걸어갑니다. 짧아서 좀 아쉽지만 꿈에서도 걷고싶은 아름다운 길입니다.

 

우측 수렁에는 연꽃들이 제 철은 좀 지났지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요. 지난 번 어리가 남행할 때에는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많이 많이 보았습니다. 연꽃은 아름답죠, 연근은 소득을 올려주는 작물이죠.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가 기대되군요. 이러한 꽃단지는 금강 고마나루까지 이어집니다. 하술막 예비군훈련장에서 제5길 보물길이 끝나고, 제6길 공산성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어떤 표시도 눈에 띄지 않아요. 뚝길 위로 올라가 보아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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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에서는 이 길을 고마나루명승길이라고 부르고 금강 고수부지 산책로와 공산성까지도 이어집니다. 뚝길에서 명승길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있어요 연꽃 대신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다리 밑을 통과하여 큰길에 오르니 우측으로 퇴석退石 김인겸金仁謙 시비詩碑에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김인겸은 조선조 영조때 선비로 은퇴하여 금강 가에서 지내다가 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를 왕래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그린 장편 기행가사를 썼습니다.

 

금강교를 건너 웅진탑熊津塔에서 인증샷을 하고 보니, 고운孤雲 최선생崔先生 시비詩碑에 최치원 선생이 쓴 시가 나와 있어요. 공산성에 이르니 정문에 삼남길 꺾쇠표지가 보입니다. 그런데 문안으로 들어서서 삼남길을 물으니 문화해설사라는 분이 처음 듣는 말이라네요. 옥룡동 공주대교 옆으로 이어지는 그런 길은 없답니다. 정문으로 나와서 근무자에게 물으니 그런 길은 있는데, 지금은 공사중에서 막아놓았답니다. 시간도 없어서 왔던 길로 되돌아서서 금강교를 건너 공주버스터미널로 걸었어요. 오후 5시 20분에 터미널에 도착했으니, 오전 8시 50분에 차령고개를 출발한 지 8시간 30분만입니다. 어리의 만보계는 10키로에서 작동을 멈췄지만, 제4길 차령고개길 6키로, 제5길 보물길 17키로, 제6길 공산성길 3키로 등을 합해 보면 26키로를 걸었어요. 그리고 삼남길은 아니지만 공산성에서 공주버스터미널까지  2키로를 더 걸었으니 총 28키로를 걸었습니다.

 

임립미술관에서 공산성까지 길을 알고 있으니 다음 기회에 걸으면 됩니다. 지난 번 하행때에 옥룡동에서 공주대교 밑 금강 가로 이어지는 삼남길 리본을 확인하고 뒤돌아 그 리본을 따라 걸어서 혈흔천길을 찾을 수 있었어요. 거꾸로  상행길을 걸으면 공산성을 통과하는 삼남길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주 9차 삼남길 걷기에서는 공주버스터미널에서 봉명교차로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경천까지 제7길 춘향전 옛길(10키로), 경천에서 노성향교를 지나 하도2리 버스정류장까지 제8길 노성고을길(14.4키로)을 걷습니다. 그리고 사정으로 보아 춘향전 옛길에서 조금 벌어놓은 시간을 모아 제9길 은진향교길 중에서 마구평리(부적면사무소)까지 걸을 예정입니다.

 

오후 6시에 공주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버스로 20분만에 차령터널에 이르렀어요. 하루 종일(8시간30분, 총 510분) 걸은 거리가 버스로는 딱 20분이니, 우리 6인방은 오후 6시부터 잠깐 동안에 자신보다 25배나 더 빠른 타임머신을 탄 셈입니다. 헬기나 비행기를 이용했더라면 더 순식간이겠죠. 서영종 님께서 그걸 계산하더니 깜짝 놀라시는 것이었어요. 그렇습니다. 우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며 우리 자신의 능력보다 25배 이상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새삼 놀라지만 여러 번 경험해 보면, 느림의 철학과 게으름의 미덕, 그리고 걸어다니는 기쁨과 보람까지도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빠르다고 뽐낼 것도, 느리다고 기 죽을 것도 없어요. 오히려 느림에 감사하고, 제 분수를 알게 되지 않을까요? 뚜벅이의 지혜나 건강한 두 발의 고마움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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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과 수험생을 위한,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해석과 핵심정리 및 문제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의 창작 배경은 일본의 관백(關白) 원자중이 물러나고 그 아들인 원가치가 관백의 자리를 계승하고 수교를 요청하여, 조정에서 이를 허락하고 영조 39년에 일본 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를 왕래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그린 장편 기행가사입니다.

 

  전체의 여정을 보면 영조 39년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항,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를 가로 질러 이듬해 1월 20일 오오사카에 도착, 목적지인 에도(지금의 동경)에는 2월 16일에 도착합니다. 돌아오는 길도 이와 같아 7월 8일에 도착하였으니, 11개월에 걸친 수륙 만여 리의 장거리 여행이었습니다.

 

  일동장유가는 '가(歌)'로서 형식은 가사에 속하지만, 내용은 광의의 수필 문학인 기행문에 속합니다. 작가의 객관적이고 예리한 관찰과 비판, 기발한 위트와 해학 등을 맛볼 수 있다는 점, 정확한 노정과 일시를 기록한 점, 상세한 기상 보고와 자연 환경의 묘사가 나타나며 여행 중의 생활과 문물, 제도, 풍속에 대한 견문이 자세히 기록된 점 등에서 문학적,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0년 전 우리 외교 사절단의 규모와 한일 양국의 외교 방법, 임진왜란 이후 아직도 가시지 않은 대왜(對倭) 감정 등을 읽을 수 있게 하므로 외교사적인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첨부파일에 전문을 다 싣지 못하고, 문학 교과서에 자주 제시되는 부분만 수록하였으며, 가급적 해석은 각주로 처리하였습니다. 일부 해석도 붙여놓았습니다.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풀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파일은 PDF로 작성하여 스마트폰에서도 열립니다.

  우리의 눈으로 타국의 풍물을 볼 때 우리는 자칫 중심을 잃고 자문화 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감정은 다분히 이중적입니다. 민족적 감정으로 항상 일본을 경멸하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그 한편이라면, 또 다른 한편은 그들의 산업과 경제에 대한 동경의식입니다. 이 이중적 시선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색이라고 하여 일본 풍을 싫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일본 스타일이 우리의 삶속에 많이 녹아 있습니다. 일본 만화, 일본 게임, 일본 풍의 음식점 등등. 그리고 일본의 원천 기술 없이 어떻게 우리가 IT 강국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충분히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찬찬히 살펴보면 여전히 현재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시선이 과거로만 향하는 것도 아름답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이 두가지 시선이 항상 균형을 이룰 때 더이상 아픈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믿음이 있는 이웃을 만나고, 믿을만한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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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꺾쇠표시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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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