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삼남,영남,관동길

16. 경북 영남길을 7인방이 걸어내려가다 : 수안보- 조령산 1 / 2015. 7. 21(화) 수안보-고사리-조령산 휴양림-

august lee 2015. 7. 2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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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 시간도 충분합니다. 조령산 자연휴양림 입구 표지석 앞에서




점심 식사후 서영종 님께서 일광택시를 교섭하여 곧바로 승차하여 고사리마을로 향합니다. 오르막에 꽤 긴 코스를 달리니 점심 먹지 말고 직진하자던 진풍길 님이 큰일 닐 뻔 했다며 놀라십니다. 8키로나 되는 길을 그대로 걸었으면 힘들어서 오후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라고요. 그래요, 올갱이 해장국먹고서 쉬었더니 힘이 납니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조령산鳥嶺山 자연휴양림 입구 표지석 앞에서 내려 바로 올라갔습니다. 15,000원의 행복은 문경 아니 여기서는 연풍 새재를 넘게하는 큰힘이 되었지마, 충북 영남길을 후울쩍 건너 뛰게 되어 충북 영남길 마무리가 좀 찜찜했다고나 할까요.


흙길을 보수하느라고 곳곳에 비닐을 깔아놓았어요. 숲속에 들어오니 그렇게 따갑던 햇볕과도 잠시 이별합니다. 약 1.5키로를 오르면 조령관입니다. 여기서는 문경 새재가 아니라 연풍 새재라고 부릅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이던가요. 한자로 年豊이니 연연 세세로 풍년이 든다? 골짜기 중에 골짜기인데 이름이 좋군요. 그런데 왜 천주교 성지가 있을까 아마도 기억하건데, 연풍 출신 순교자를 기리는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간판에 문경 새재를 노래한 시 詩가 적혀 있었는데, 진 교장님이 당부하네요.꼭 찍어 놓으라고요.


숲에서는 옷을 벗자는 안내판이 - 숲은 자연병원이요, 피톤치드는 만병통치약이니 땀 흡수가 잘되는 간편한 옷을 입고 산책이나 조깅, 심호흡과 사색을 즐기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계곡에 물을 끌어다 통나무에 홈을 파서 물을 흘러보냅니다. 시원한 물과 층층이 연결되는 통나무 수로水路가일품입니다. 나무 그늘이 우리를 감싸주어 가볍고 시원한 산책을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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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길을 따라 걷는다. 그 아름다운 꿈은 언제나 길에서 시작하여 길에서 갈무리된다. 더 넓은 대륙으로, 더 푸른 대양으로 향하던 문명과 소통의 길, 세상의 중심으로 나서는 연풍 새재길, 그대와 함께 걷고 싶다.


조령관에 도착합니다. 고서리마을까지 2.2키로, 제2관문(조곡관)까지 3.5키로이군요. 과거길임을 알리는 조선시대 선비 석상石像을 꼭 소년처럼 만들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여기는 충북 괴산군 연풍이랍니다. 시화時和 연풍年豊 길 이야기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누구의 글인지 맘에 들었고 여기는  경북 '문경'아니라 충북 괴산 '연풍'이니 연풍 새재가 옳은 표현입니다.



문경관문 - 조령관입니다.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수행차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보내 귀순하였답니다. 이 관문은 영남과 서울 간의 관문關門이며 군사적 요새지였습니다. 삼국시대에는 동쪽 계림령을 중시했는데, 고려초부터 새재를 조령鳥嶺라고 부르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했답니다.




임진왜란때 신립이 후퇴한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 辛忠元이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여 왜병을 기습하였답니다. 그 후 숙종때  제1관문 주흘관 主屹關, 제2관문 조곡관 鳥谷關, 제3관문 조령관 鳥嶺關 등 3중으로 관문을 완성하였어요.새재를 넘어 소조령길 제1코스 새재길 9.1키로미터(소요 시간 3~4시간)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문경 새재 책바위 이야기와 낙동강 발원지도 부근에 있답니다. 사진 찍으며 뒤따라가느라고 발원지는 가지 못했어요. 흙길이 좋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이진터[二陣址, 터 지]  푯말이 세워진 곳이 해발 475미터이군요. 이진터는 소서행장이 왜군 18,500명을 이끌고 진안리레 진을 치고 문경 새재를 정탐할 때, 신립申砬 장군이 농민 모병군 8,000명과 함께 제1진은 제1관문에 배치하고, 제2진의 본부로 삼았던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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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토 저장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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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