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삼남,영남,관동길

27. 경북 영남길을 7인방이 걸어내려가다 : 병성천10 / 2015. 8. 26(수) 10:51 충의사-13:10 헌신마을

august lee 2015. 8. 24. 22:19




사벌왕릉 앞에서- 전'사벌왕릉'이라고 씌이는데, 전傳이란 그렇게 전해져 내려온다는 의미입니다.

포도가 영글어가요. 포도밭 안에 소형 경운기?가 보입니다.








포도가 영글고 익어갑니다. 화달1리 정자가 나오고 진풍길 선발대장님은 마을회관에 가서 사벌왕릉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하십니다. 달천의 유래에 대한 설명문도 나오고 삼층석탑에 이어 사벌왕릉이 나타납니다. 거기에서 병성천을 건너는데 갈림길을 확인해야 하죠. 병성교를 건너기 전에 정기룡 장군 묘소를 지납니다. 병성교에는 아자개성터 1.5키로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어요. 바로 앞에 병풍산이 버티고있는데, 우리는 길 따라 우측으로 나갑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병풍산 자락에 고분군이 있고 그 좌측으로 성동마을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었어요. 영남길에 지름길인 서울길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로 착각하고 아직 멀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산넘어 성동마을에는 낙동강 풍경 트레일 코스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어요.


우리 일행은 충의사를 나와  화담1리를 지나는데 달천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612년 신라시대에 마을이 처음 생긴 이래 1,400년 세월이 흘러갔군요. 화답리 삼층석탑은 정밀안전진단 작업중이고, 바로 옆에 사벌왕릉이 있습니다. 상주에 있던 소국인 사벌국의 왕릉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주변에 고분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왕릉 서편에 신도비가 있고, 신중 동국여지승람에는 상산 박씨의 시조인 신라 경명왕의 아들 박언창 朴彦昌이 천 년 전인 917년 사벌군 沙伐君으로 책봉되어 있다가 후삼국 동란기에 사벌국을 세웠는데 그의 묘소라고 씌여있답니다.


병성교를 지나 우측길을 따라 걷는데, 강가의 모래 운반차량들이 수시로 오가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중부 내륙고속도로 교각 아래 그늘이 있어서 쉬었다 갑니다. 12시가 지났는데도 식당을 찾을 수 없었어요. 사벌면사무소 못 미쳐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가자는 서영종 님의 제의에 따르지 못해 점심을 굶을 판입니다. 헌신3길 도로에서 상주 북천반점 오토바이를 만났어요. 서영종 님이 오토바이를 세우고 짜장밥을 주문합니다. 상주까지 십여 분이면 다녀온다며, 전화로 일곱 그릇을 주문하고 떠난 배달통은 함흥차사가 되었는지 2~3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요. 길가 가게에서 막걸리를 몇 병 사서 두 세 잔씩 마시는 것이 점심 대용이 되었습니다. 한참만에 다시 나타난 오토바이 젊은이는 배달통을 4개나 싣고서, 다음 번 2차로 배달해드린다고 소리치며 종적을 감추고 맙니다. 1~20분을 더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어요.


선발대가 25번 국도를 피해서 소로를 찾으려고 헤매였지만, 쭉 뻗은 산길이 그만 끊기도 맙니다. 원지점으로 되돌아 와서 살펴보니 상주IC 라고 짐작되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늘도 없는 곳에서 힘이 다 빠져 7인방 모두 발걸음이 무거워 보입니다. 낙동에서 오후 3시55분에 동서울행 막차가 있기에 아무래도 완주는 힘들것 같아요. 가는데까지 걷다가 버스를 이용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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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공 정기룡 장군의 묘소를 지납니다. 진풍길 선발대장님이 뛰어가서 확인하고 오셨어요. 감사드립니다.






610   11:25  아자개 성터 1.5Km라는 표지가 붙어있는 병성교, 앞에 병풍산이 보입니다.


아자개(阿慈介)는 아자개(阿慈个)·아자개(阿字蓋) 또는 원선(元善)이라고도 하죠.『삼국유사』권2. 후백제 견훤조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 의하면, 아자개는 신라 진흥왕과 사도부인(思刀夫人) 사이에서 태어난 구륜공(仇輪公)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아자개는 처음에는 농업에 종사하였지만, 후삼국시대에 전국 각지에서 농민을 포함한 지방세력이 봉기하자, 그도 885년(헌강왕 11)∼887년(진성여왕 1)에 사불성(沙弗城 : 지금의 경북 상주, 사벌성 沙伐城?)을 근거지로 군대를 일으켜 장군을 자칭했답니다.


그 뒤 그의 아들인 견훤이 892년 무진주(武珍州)를 점거하고, 900년(효공왕 4) 완산주(完山州)를 근거로 후백제를 세운 이후에도, 아자개는 계속해서 상주지방에 웅거하다가, 918년(고려 태조 1) 9월,고려에 항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고려사). 그 아자개 당시 쌓은 성터가 남아있고 성동마을로 연결되는 산길이라니 한번 가볼만 합니다.




병풍산 좌측으로 성동마을로 가는 산길(2.8키로)이 있습니다. 헌신동으로 돌아가면 약 4.5키로인데 그걸 잘 몰랐어요. 영남길 가운데 지름길인 서울길은 두 군데인데, 하나로 착각하고 아직 한참 남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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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